<엔低흔들리는한국수출>上.1달러=120엔, 일본 "한국 조선업 추락" 기세등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지난달 19일 일본조선공업회 정례회견장.후지이 요시히로(藤井義弘)회장은“1달러=1백20엔대의 엔저로 일본이(건조비용면에서) 역전,한국보다 5%정도 우위에 서게 됐다”고 자신있게 설명했다.

“엔저로 경영상태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선가(船價)마저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해 시설확충에 주력했던 한국업계의 위기상황이 고조되고 있다.”대우중공업 기원강(奇源康)이사의 얘기다.

지난달 중순 프랑스의 루이 드래프스사가 17만급 유조선을 발주했다.늘 그렇듯 한.일업체들이 경합을 벌였다.현대중공업이 4천3백50만달러를 제시했다.겨우 제조원가를 맞출 정도의 최저가격이었다.그러나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3천7백50

만달러를 제시했다.대금지급 조건도 일본쪽이 훨씬 유리했다.일본측에 낙찰된 것은 불문가지다.

93년 엔고를 바탕으로 한국 조선업계의 신규 수주물량이 사상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94년부터 한국에서는 설비증강 바람이 불었다.95년 봄 1달러=80엔대의 초엔고 상황에서 한.일간 건조비용 격차는 최고 30%까지 벌어졌

다.물론 한국이 그만큼 쌌다.일본 조선업계에는'한국위협론'이 팽배했다.

이제 1달러=1백20엔.30%의 격차는 이같은 환율변동 하나만으로도 다 까먹고 남는다.게다가 엔고를 버텨내기 위한 외주(外注)확대,공정합리화등으로 생산성도 높아졌다.한국위협론은 희미해졌다.

야마이치(山一)경제연구소는 최근“95년 기준 한국에 20%나 불리하던 초대형유조선(VLCC)의 건조비용이 지난해말 기준 5% 우위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출혈을 감수하며 치열한 수주경쟁을 벌이던 일본은 이러한 우위를 바탕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7대 조선업체들은 지난해 이미 99년 하반기까지의 물량을 확보해 놓았다.그런데 올들어서도 손익분기점에 못미치는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한다.이는 최대의 경쟁자인 한국업체들을 괴멸시키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한국조선협회

한 관계자의 말이다.

“1달러=1백엔 정도는 돼야 환율상의 경쟁력이 살아날 수 있다.”정익영(鄭益永)현대중공업전무의 얘기다.그러나 1달러=1백20엔의 엔저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얼마전 열린 서방선진7개국(G7)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담에서도

대체로 그런 합의가 이뤄졌다.한국조선업계에 치명상를 입힌 엔저와 함께 노사분규.인건비 상승.설비투자 부담등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본의 자신감은 세계 조선시장에서 분명한 주도권을 잡겠다는 움직임으로도 나타나고 있다.일본조선공업회는 오는 4월10~11일 열리는 양국 조선수뇌회담에서 한국측에 선박건조수요 예측 수정을 요구하고 수급균형 회복을 위해 협조노선을 취

할 것을 촉구한다는 방침이다.이제 가격경쟁력에서도 일본이 우위에 선 마당에 한국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으리란 자신감에서다.

현재로서는 활로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일본업계도 같은 상황을 겪었었다.

“엔저추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살아남기 위한 모든 노력이 필요하다.엔저와 인건비 상승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재나 부품의 해외조달을 늘리고 있다.노사분규 예방을 위해 노사협력을 강화하고 인력재배치등 구조개편작업을 실시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鄭전무의 말에는 비장감마저 서려 있다. [도쿄=이철호 특파원,임봉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