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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고 교실에선…

중앙일보

입력

지난 11월 5일, 민사고 학생에게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틴틴경제를 통해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지면을 통해 민사고를 알리고 싶다”는 뜻도 전해왔다. 틴틴경제는 4회에 걸쳐 민사고 특집을 싣는다.

가야금 타는 학생들 - 민족주체성 교육 ‘둥기~ 당기~’
민사고를 찾은 건 지난 21일. 초겨울이지만 강원도의 바람은 한겨울인 양매섭고 차가웠다. 파스퇴르 공장을 지나 학교로 들어가니 지난밤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아 운동장이 온통 은빛으로 반짝였다. 처마 끝 고드름이 시골할머니 댁을 떠올려 기분이 설렜다.
“안녕하세요!” 두루마기 차림의 학생들이 지나가며 인사했다. 마주치는 학생마다 밝은 낯빛에 큰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덕분에 얼어붙은 몸이 절로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이청(57) 사무국장이 회의실에서 나와 사진기자를 맞이했다. 그는 “많은 언론매체가 민사고 관련 보도를 하지만 학생들의 진솔한 모습을 담는 경우는 흔치가 않다”며 “학생들의 생각과 시선이 담겨있는 참신한 기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내가 “오는 길에 학생들이 너무 밝게 인사해서 놀랐다”고 말하자 그는 “혼정신성이라 불리는 우리의 전통예절교육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민사고 학생들은 하루에 두 번, 아침·저녁으로 부모님 대신 선생님께 큰 절을 올린단다. 나에게 메일을 보낸 장유진(17)양이 언제 들어왔는지 “인사하는 것은 선배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전통이에요”라고 자랑한다.

 유진이와 함께 본격적인 취재에 나섰다. 유진이가 제일 먼저 안내한 곳은 세계사 교실. 15명 정도의 아이들이 수업하고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오늘은 인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독일인 간제(Ganse) 선생님이 “인도의 차별정책에 대항해 최하층민이 분신을 했다”고 말하자 정재원(17)양이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며 전태일 이야기를 들려줬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노트북을 활용해 수업내용과 관련된 자료들을 그때그때 검색해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어실력들도 어찌나 뛰어난지 아이비리그 강의실로 착각할 정도였다.

 대학교 도서관처럼 개가식인 민사고 도서관에는 없는 책이 없었다. 소설과 사전은 물론 영화·예술·스포츠·외국잡지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국내도서와 해외도서로 분류해 놨다. 마침 도서관에서 메일을 확인하던 백두산(18)군은 “필요한 책이 도서관에 없을 때는 신청만 하면 학교에서 책을 구입해준다”며 “주말에도 개방을 하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학교에서 배려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민족교육관. 전통을 중시하는 민사고는 1학년 학생들에게 국악을 가르친다. 남학생은 대금이나 소금·태평소를, 여학생은 가야금을 배우는데 입구에서부터 들리는 악기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여학생 6명이 진도아리랑을 가야금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손놀림을 지켜보며 개인지도를 했다.
이새봄(16)양은 “접하기 힘든 우리 전통악기를 배운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요즘은 꽃노래를 즐겨 연주한다”고 전했다. 인수연(33)교사는 “가야금 수업은 민족주체성 교육의
일환으로 아이들이 우리음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의 실력이 늘어가는 걸 지켜 보는 것이 흐뭇하다”며 웃었다. 인 교사는 내친 김에 시범연주까지 들려줬다. 아이들과 함께 넋을 놓고 선생님의 멋진 연주를 바라봤다. ‘우리 악기가 이렇게 멋진 소리를 가지고 있었다니. 나도 한 번 배워볼까?’옆방에는 남학생들이 대금을 열심히 불고 있었다. 선생님의 장구 반주에 맞추어 종묘제례악을 연주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한 곡이 끝나자 김민승(16)군은 “아 힘들어!”라며 벌렁 드러눕는다. 그는 “대금은 입을 펴서 불어야 하기 때문에 소리내기가 매우 어렵다”며 “아직 실력이 부족해 주말에도 연습하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전광진(28) 교사는 “대금을 불기 위해서는 복식호흡을 해야 한다. 복식호흡은 집중력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건강유지에도 효과적”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악기연주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유연하게 풀어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마침 오늘은 1년에 한 번 전교생이 모여 사진을 찍는 날. 학생들이 운동
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한복과 두루마기를 차려 입은 모습은 일반 고등학생과 조금 다를지 몰라도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 것은 여느 고등학생이나 똑같았다. 이번 방문으로 ‘학생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민사고는 어떤 곳일까?’라는 의문이 조금은 해소됐다. 이 친구들의 실제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보고싶어졌다.

프리미엄 송보명 기자

사진_ 프리미엄 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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