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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과 대안

6. 민주주의, 참여냐 대의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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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왼쪽부터 이내영 고려대 교수, 장훈 중앙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 [박종근 기자]

진정한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참여와 대의의 효율적인 결합을 통해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참여와 대의가 격렬하리만큼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과 '탄핵 후폭풍'은 참여와 대의의 충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그래서 혹자는 대의의 위기를 말하고, 또 다른 혹자는 참여의 과잉을 주장한다. 과연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이고, 참여민주주의의 과잉인가. 아니면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불가피한 진통인가. [편집자]

<참석자>

▶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 이내영 고려대 교수·정치학
▶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
▶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 참여제 발전시켜야…국민소환제 등 적극 도입해야

▶ 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

지금 우리 사회는 중요한 역사적 이행기를 지나고 있다. 이런 정치사회적 격변기일수록 역사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들이 보다 밀도 높게 교차하고 충돌하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가로질러 충돌하는 중요한 화두 중 하나가 참여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관계에 관한 문제다. 유권자들의 능동적 정치참여가 민주주의의 필수요소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참여민주주의=포퓰리즘'으로 바라보고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포퓰리즘이란 흔히 남미의 선동적 정치를 지칭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정치인들이 실현 불가능하거나 결과적으로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사회복지.경제공약을 남발해 유권자의 환심을 사고, 집권한 뒤에는 자신들의 이권만을 추구했던 정치행태를 말한다. 이때 유권자들은 정치인과 정당의 정책과 이념에 자발적으로 동의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의 옳지 못한 선동에 속아 선거에서 표를 몰아주는 '동원'의 대상이 된다.

반면 참여민주주의란 현대 민주주의가 대의제 원리에 기초한다는 것을 인정하되 대의제의 부족한 점을 유권자들의 적극적 참여로 보완하려는 정치제도나 정치운동을 가리킨다. 예컨대 국민소환제는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유권자를 대신해 일정기간 정치를 대행하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대표자가 유권자의 뜻을 배신했음이 명백할 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보완적인 제도다. 지난 3일 여야 대표회담의 결과로 나온 협약문에서도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국민소환제 및 주민소환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로 하는 등 이제 참여민주주의의 확대는 정치를 정화하고 새롭게 만드는 대안이 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과연 어느 범주에 속하느냐는 결국 유권자의 수준에 대한 판단에 달려 있다.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허황된 공약과 정치선동만으로 표를 몰아주기엔 2004년 지금의 한국 유권자들은 너무나 성숙해졌다. 진성 당원이 정당지도부를 감시하고 인터넷을 통한 공론장이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스크린 하는 시대에, 정치인들이 사탕발림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할 여지는 점점 줄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정치현상의 부정적 한 측면만을 부풀려 미리 걱정하는 게 아니라 함께 좋은 정치를 만들어나가는 지혜다. 총선투표율이 50%대를 간신히 넘긴 우리 사회에서 너무 많은 참여의 부작용을 고민하는 것은 사치다. 더 많은 참여, 더 건강한 참여를 위한 정치인들의 노력이 경주돼야 할 때다.

김영춘 열린우리당 의원

*** 대의제 발전시켜야…참여 좋지만 포퓰리즘 부작용

▶ 김석준 한나라당 당선자

선진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를 근간으로 발전해 왔다. 소규모 도시국가의 직접민주주의가 대규모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에 따라 대의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의사와 이익을 정당과 의회를 중심으로 반영하고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국민이 직접 대표자를 선출함으로써 여전히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가미하고 있다. 아울러 다양한 이익단체.시민단체 및 언론기관이 대의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해 지속적으로 대표기관이 국민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다.

이들이 제 기능을 못할 때 국민은 직접 정치참여에 나서면서 참여민주주의의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참여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의 적절한 균형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체가 된다. 지난 10여년간 우리 사회는 커다란 시련에 직면해 왔다. 기존의 정당과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함에 따라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그만큼 참여민주주의의 활동공간이 넓어져 왔다. 시민사회의 급속한 성장과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통한 인터넷의 획기적 보급도 정보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21세기에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의 적절한 조화는 시대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바람직한 참여민주주의 모델 대신 일부 계층과 세대가 중심이 된 구시대적인 포퓰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노골적으로 특정 시민단체를 부추겨 자신의 취약한 권력 구축에 악용하면서 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시민사회 단체의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게 했고 급기야 '시민사회의 실패'를 우려하게 만들었다.

일부 시민단체가 벌이는 각종 선거에서의 낙선.당선 운동, 촛불시위의 확산, '노사모' 등 디지털 포퓰리즘의 확산은 참여민주주의의 일탈된 변형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둘러싸고 나타난 국회와 정당 무시 풍조나, 총선에서의 탄핵 역풍 등도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들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다수의 급진진보 세력이 총선을 통해 국회에 진출하게 된 것은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를 조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의회 내에 마련된 것이란 점에서 차라리 다행이라 하겠다. 앞으로는 민생 중심의 국회에서 참여와 대의가 조화를 이뤄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펼쳐지도록 선의의 정책경쟁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김석준 한나라당 당선자

*** "대의제 큰 틀 두고 참여 보완이 바람직"

▶사회='차떼기' '방탄국회' '탄핵' 등으로 국회가 불신받으면서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시각이 있다. 정말 위기인가.

▶장훈=위기란 표현에 동의하기 어렵다. 대의민주주의가 내재적.현실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1987년 이후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오히려 발전해왔다. 현재 정당 내부나 후보 지명 과정의 민주화 등을 보면 특히 그렇다.

▶이내영=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보듯 국회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식의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고 성숙시키는 것 대신 참여를 통해 돌파해야 할 위기적 대상으로 보는 것은 무리다.

▶김호기=그렇지만 대의민주의의가 새로운 전환점에 놓여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생산적 긴장관계를 통해 담보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위기라기보다 차라리 미성숙 상태다.

▶정해구=참여와 대의의 관계가 형식화된 데는 지역주의 정치도 관련이 있다. 선거 때면 지역주의를 동원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다 보니, 선거가 끝나면 지역주의에 과도하게 의존해 형성된 대의제가 참여의 열망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는 괴리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사회=한편에선 '참여민주주의의 과잉'을 우려한다.

▶이=공식적인 투표율 등을 감안하면 한국의 참여민주주의 자체가 과잉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시민단체의 참여방식과 대의민주주의와의 관계설정이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장=서유럽에선 정당이 정상적인 역할을 하다 70년대에 한계에 부닥치자 시민단체가 개혁을 요구하는 식의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존의 정당과 대의제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갑자기 시민사회로부터 전달되는 개혁 에너지가 지나치게 과도해진 모양새다.

▶정=대의와 참여의 관계는 오랜 지속과정 속에서 봐야 한다. 대의정치가 도입됐지만 권위주의 정권과 지역주의 정치의 폐해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아래로부터의 참여적 의견을 반영하지 못했다. 현재 상황은 참여의 과잉이 아니라 지난 세월 동안 불균형이었던 참여와 대의의 관계가 제자리를 잡는 과정이다.

▶김='대의의 대행'이란 표현을 쓰고 싶다. 대의민주주의의 주체는 정당이지만 제 역할을 못해 왔다. 그래서 정당들이 방치해온 호주제 폐지, 이라크 파병 반대 등 주요 이슈를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대의를 대행하게 된 것이다.

▶사회=그런 대행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확보되는 것인가.

▶이=공공성이 관건인 시민단체는 국회와 달리 평가받는 과정이 없다. 물론 시민단체도 공공성이 없으면 회원이 줄어드는 등 영향을 받겠지만 선거를 치르는 정치권보다는 평가의 결정도가 낮다. 따라서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 등을 위해 일시적으로 사회적 정당성의 지위를 부여할 수는 있겠지만 상시적으로 대의제를 대행할 역할을 시민단체에 주기엔 정당성이 약하다.

▶김=시민사회의 참여 주장도 정당성이 없으면 결국 거부되고 만다. 더구나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내부에서 토론이 끊임없이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의의 대행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장=결국 대의의 대행이 대의민주주의에 계속 침을 뱉음으로써 개혁의 동력을 얻으려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 대행의 정당성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당파성이 지나치게 강한 단체들이 시민사회를 과다 대표하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김=그것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 간 이념구도의 비대칭성 때문에 야기된 일시적 현상이다. 정치권의 취약한 진보적 성향을 메우기 위해 진보성향의 NGO들이 시민사회를 대표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이 보수.중도.진보의 삼각구도를 이룬다면 진보성향 NGO의 역할도 점차 조정될 것이다.

▶사회=참여의 확대가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을 조장하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

▶이=노무현 정부가 출범 후 어려움에 처했던 것은 여소야대(與小野大) 때문이기도 했지만 야당을 상대로 정책이나 개혁 이슈를 설득하고 타협하는 것을 포기한 채 시민단체 등을 동원해 상황을 돌파하려 했다는 데 더 큰 원인이 있었다. 일부에선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시민사회수석으로 되돌아온 것을 놓고 그 같은 정치적 의도의 재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시민사회의 의견을 정치적으로 반영하려는 기류를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는 것 자체가 더 문제다. 문제의 본질은 노무현 정부의 포퓰리즘적 전략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대표되던 의회권력의 오만에 있었다.

▶사회=포퓰리즘 논란은 특히 대폭 확대된 네티즌의 정치참여를 놓고 더욱 뜨겁다.

▶정=참여민주화운동이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참여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인내를 갖고 지켜보면서 민주적 공론 장을 통해 어떻게 시민의 의견과 참여를 성숙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그러나 네티즌의 정치참여가 자칫 정치적 동원과 정쟁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더구나 인터넷을 통한 정치참여의 확대가 특정세력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우려가 크고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김=시민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자율성인 것처럼 사이버 영역에서도 중요한 것은 자율의 원칙이다. 인위적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울러 익명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일종의 권리이기 때문에 인터넷 실명제에도 반대한다.

▶장=사이버 공간이 자율과 자정의 공간이라는 점엔 공감하지만 다른 사람의 자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책임의식마저 결여되어선 곤란하다.

▶사회=결국 참여와 대의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가. 둘 사이의 바람직한 역학관계는 어떻게 모색 가능한가.

▶김=대의와 참여는 함께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버마스는 '쌍선(雙線)적 토론정치'라는 표현도 썼다. 의회라는 공론장과 시민사회라는 무정형의 공론장을 두 개의 철도 레일로 보고 이들 사이의 끊임없는 피드백을 활성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한 레일이 기울면 민주주의라는 기차는 탈선하고 만다. 아울러 시민사회는 모든 문제 제기가 가능하지만 의회라는 여과장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장=민주주의의 두 축이라 할 참여와 대의 중 궁극적으로 동력이 전달되어야 하는 축은 대의다. 그동안은 지나치게 대의의 실패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하지만 총선 이후 공은 시민사회로 넘어갔다. 시민단체도 변화와 개혁을 해야 한다. 아울러 방만한 표현의 자유를 자기절제라는 어려운 미덕으로 보완해야 한다.

▶이=한국 민주화의 진전에 시민사회의 역동성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대의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참여가 확대돼야지 아예 대의제를 대체하겠다고 나서면 곤란하다.

▶정=탄핵의 경우엔 국회가 형식적인 면에 얽매여 내용적으로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잘못 쓴 사례다. 그렇다고 정당이나 국회의 대의제 역할을 줄이는 것은 옳은 해결책이 못 된다. 민주노동당의 진입으로 정당 대열에서도 어느 정도 새로운 틀이 잡힌 만큼 장기적으로는 대의와 참여의 좋은 조응관계가 마련되리라고 낙관한다.

▶사회=참여와 대의가 조화를 이룬 한국적 정치사회 모델을 창출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장=자신의 입장과 같으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옳지 않다는 생각을 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토론을 하는 가장 큰 목적은 A도 B도 아닌 C의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 아닌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큰 대화가 필요하다.

▶정=우리 사회에 두 가지 흐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시민사회의 당파성이나 보수 언론이 갖는 당파성은 과잉되거나 왜곡되지 않는 한 상호 인정되어야 한다. 대의든, 참여든 사회적 갈등관계를 인정하면서 공정한 규칙과 정당한 경쟁을 통해 타협점과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민주노동당이 의회 밖 세력으로 있을 때는 참여적 시민운동단체처럼 활동했다. 하지만 의회로 진출하면서 대의적 가치를 훈련받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참여와 대의의 새로운 모델을 선보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대의냐 참여냐"는 더 이상 일방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보완과 동시진행의 영역이 되었다.

▶김=대의와 참여가 생산적 긴장관계를 가져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우선 정당이 정책경쟁을 해야 한다. 공론장의 주체인 언론도 진보든 보수든 관계없이 더 이상 정치권력화하지 말고 포괄적으로 '권력비판'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여전히 지역주의 투표 성향을 보이는 유권자 등 시민사회의 의식에도 문제가 있다. 이를 위해 중장기적 교육개혁이 필요하다. 아울러 시민사회 내부의 개혁도 필요하다. 그래야 대의와 참여의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갈 수 있다.

정리=김성탁 기자

*** 사회자 메모…참여 과잉이냐 아니냐 초반부터 각 세워

▶ 정진홍 논설위원

처음부터 날이 선 대화가 오갔다. 여간해 타협점을 구하기 어려워 보였다.

김호기 교수는 참여의 증대가 전 지구적 수준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참여와 대의의 충돌을 국내적 특수상황으로 보려는 시각을 애초부터 봉쇄하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장훈 교수는 한국에서 대의제는 위기이기는커녕 꾸준히 발전해 왔음을 강조했다. 그것은 마치 탄핵을 대의제의 위기 사례로 보지 않고 오히려 '탄핵' 의제를 절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한국의 대의제가 성숙(?)했다고 보는 시각과도 통하는 듯했다.

이내영 교수는 대의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참여가 확대돼야지, 아예 대의제를 대체하겠다고 나서면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참여를 빙자한 포퓰리즘의 징후도 경계했다. 정해구 교수는 현재의 상황은 대의의 위기도, 참여의 과잉도 아닌 지난 세월 동안 불균형되었던 참여와 대의의 관계를 제자리잡게 하는 진통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이런 진통 속에서 참여와 대의의 새로운 한국적 모델 창출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전에 참여와 대의의 두 레일 위를 달리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탈선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