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상원직 팔려다 … 블라고예비치 주지사 붙잡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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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상원의원직을 돈 받고 팔려고 한 로드 블라고예비치(52) 일리노이 주지사가 9일 부패 혐의로 기소됐다. 연방검찰은 한 달 동안 전화 감청 수사를 한 끝에 블라고예비치와 비서실장 존 해리스(46)를 사기·독직·뇌물 교사 등의 혐의로 자택에서 체포했다. 법원에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블라고예비치는 주지사직을 사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사건을 슬프게 생각한다”면서 “내 후임자 임명과 관련해 그와 접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난 돈 벌길 원한다”=미국에선 연방 상원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주지사가 후임자를 임명한다. 검찰에 따르면 블라고예비치는 이를 이용해 선거자금을 많이 내거나 자신의 주지사 퇴임 이후를 보장할 사람을 오바마 후임자로 고르려 했다. 보훈장관이나 대사직까지 챙길 생각도 했다.

그는 “이건 황금”이라며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내가 차지하겠다. 상원의원이 되면 2016년 대선 출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지사 연봉이 17만7000달러인 그는 “돈을 벌길 원한다”며 “내가 관여할 재단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는 사람에게 의석을 팔겠다”고 했다. 또 퇴임 후 재단에서 30만 달러 이상의 고연봉을 받겠다는 계산도 했다. “아내를 연봉 15만 달러의 기업 이사직에 취직시키고 싶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이 드러난 건 연방수사국(FBI)이 법원 허가를 얻어 한 달 동안 그의 선거사무소와 전화를 감청했기 때문이다. 사건을 맡은 패트릭 피츠제럴드 검사는 “블라고예비치의 행위는 무덤에 누워 있는 링컨을 돌아눕게 만들 정도”라고 했다.

피츠제럴드는 “오바마가 후임 임명과 관련해 블라고예비치와 협의했음을 시사하는 내용은 수사 자료에 없다”고 말했다. 감청 자료에 따르면 블라고예비치는 저속한 말을 쓰면서 “오바마의 측근들이 고맙다는 말 외에 나에게 준 게 없다”고 했다.

◆“비판 언론인 잘라라”=블라고예비치는 프로 야구팀 시카고 컵스와 일간지 시카고 트리뷴 등의 소유자인 트리뷴 컴퍼니가 최근 파산보호 신청을 앞두고 주정부 지원을 요청하자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인을 해고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그는 시카고 컵스 홈구장 ‘리글리 필드’ 매각 문제와 관련해 주정부와 협의해 온 트리뷴에 비서실장 해리스를 시켜 “우리가 원하는 건 그들의 퇴직이고, 논설의 지지”라는 뜻을 전했다. 이후 해리스는 “사주가 우리의 걱정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블라고예비치는 이 밖에 선거자금을 댄 개인에게 공직을 주고, 기업엔 주정부의 도로·병원 등의 건설 사업을 맡겼다고 검찰은 밝혔다.

◆“지금 농담하나”=FBI 수사관들은 9일 오전 6시쯤 블라고예비치의 집에서 수갑을 채웠다. 고위 정치인을 출두 형식으로 조사하는 예우를 하지 않은 것이다. FBI의 그랜트가 전화로 그를 깨우고 나서 “체포하겠다”고 하자 그는 “농담하느냐”고 대꾸했다고 한다. 그는 보석금 4500달러를 내고 풀려난 뒤 “상원의원 임명권은 여전히 나에게 있다”며 주변의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정치권에선 “오바마의 후임을 특별선거로 뽑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블라고예비치는 경선 때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러나 그가 각종 부패 논란을 일으키자 오바마 측은 전당대회 초대 손님에서 그를 빼는 등 거리를 둬 왔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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