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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정주영 회장 드라마로 '환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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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정주영 회장이 모델인 천태산 역을 맡은 차인표(右)와 고 이병철 회장을 연상시키는 국대호 역의 전광렬. 두 실존 인물은 젊은 시절 서로 모르는 사이였으나, 극 중에서는 포부를 함께 나누는 사이로 등장한다.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과 현대그룹을 세운 고 정주영 회장. 두 사람의 공과(功過)는 보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갈릴 수 있겠지만, 오늘의 한국 경제를 만든 두 주역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재계 거목이었던 두 사람의 일대기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 오는 7월 5일부터 방영할 MBC 100부작 대하 드라마 '영웅시대'(극본 이환경, 연출 소원영)다.

제작진은 지난 25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제작발표회를 열고 주요 배역과 기획 의도 등을 밝혔다. 정주영을 모델로 한 천태산 역은 차인표가, 이병철이 모델인 국대호 역은 전광렬이 맡았다. 이 밖에 천태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각 임현식과 선우은숙이, 이명박(현 서울시장)이 모델인 박대철 역에는 유동근이 캐스팅됐다.

소원영 PD는 "요즘 경제가 아주 어렵고 특히 카드빚이 큰 문제라고 한다. 시청자들이 '영웅시대'를 통해 과거에 우리가 어떻게 가난을 딛고 일어섰는지를 다시 생각하며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인표는 "천태산은 빈곤에서 탈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던 사람"이라며 "실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나 인생을 헛되이 보내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은 이 드라마를 꼭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광렬은 "최고를 향한 이병철의 신념과 용기, 추진력을 국대호란 인물을 통해 새롭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영웅시대'는 현대아산 고(故) 정몽헌 회장에 해당하는 천사국의 자살로 시작한다. 박대철은 비보를 듣고는 천태산과 함께했던 파란만장한 과거를 회상한다. 이어 천태산.국대호의 어린 시절을 잠깐 다룬 뒤 사업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빈농의 장남으로 태어난 천태산은 쌀가게에서 시작해 자동차 정비업.건설업 등에 잇따라 손을 댄다. 반면 천석꾼 지주의 막내인 국대호는 은행 빚을 얻어 땅을 사들이다 중.일전쟁으로 망한 뒤 국수공장으로 재기한다. 이처럼 드라마의 큰 줄기는 정주영.이병철의 실제 삶과 대체로 일치한다. 제작진은 1961년 5.16을 기점으로 1부와 2부로 나눌 계획이다. 2부에서는 차인표 등 주요 배역들도 바뀌게 된다.

물론 드라마라 꾸며낸 상황이나 인물도 많다. 특히 천태산과 국대호의 관계는 대부분 허구다. 원래 정주영과 이병철은 나이가 들 때까지 서로 알지 못했지만 천태산과 국대호는 젊은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설정돼 있다. 제작진이 상하이까지 건너간 것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둘의 상봉장면을 찍기 위해서였다.

1930년대 후반 국대호가 사업을 위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천태산이 꿈에서 그를 만난다. 이 자리에서 천태산이 "천하제일의 사업가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자 국대호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맞받아치며 호탕하게 웃는다. 이 장면은 지난 24일 상하이 푸싱다오(復興島)의 한 부둣가에서 찍었다. 이튿날엔 상하이 외곽 처둔(車墩)세트에서 국대호가 만주 상점가를 둘러보며 사업 아이디어를 얻는 장면을 촬영했다.

제작진은 일부에서 특정 그룹 창업자를 미화하는 게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작발표회장에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소원영 PD는 "재벌을 미화할 의도는 전혀 없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허구를 다루는 드라마라는 점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차인표는 "내가 맡은 역은 실존했던 정주영이 아니라 가공 인물 천태산"이라며 "천태산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제작진은 차인표의 일정 때문에 애를 태우고 있다. 대만.홍콩 합작 드라마 '톈루요칭(天如有情)' 에 출연하느라 본격적으로 '영웅시대' 에 합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24일분 촬영이 그가 처음 출연한 것이었다. 신호균 책임PD는 "지난 두달 동안 4부 정도밖에 못 찍었다"며 "방송이 나가면 촬영 일정이 상당히 빠듯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상하이=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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