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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열린 웰빙아파트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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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 웰빙 아파트는 친환경 단지(上)로 조성돼야 하며 주택기능의 첨단화(中)가 실현되고 완벽한 스포츠시설까지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 오전 8시. 출근시간. 맞벌이 주부 양미미씨는 에어컨과 전등을 켜놓고 나왔다는 것을 깜박했다. 하지만 다시 올라갈 필요는 없다. 미미씨는 휴대전화로 홈네트워크 관리 사이트에 접속해 간단히 버튼을 눌러 에어컨과 전등을 껐다.

# 오전 11시. 빈 아파트에 누가 찾아왔다. 초인종을 누르자 회사에 있는 미미씨의 휴대전화에 택배회사 직원의 얼굴이 보인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관리실에 물건을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 오후 7시. 퇴근 뒤 남편과 외식하기로 했다. 집에 있는 애완견 생각이 난다. 레스토랑 입구에 마련된 인터넷으로 홈네트워크 사이트에 접속한 뒤 사료 버턴을 눌렀다. 사료 배급 기계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먹이를 먹는 강아지 모습이 보인다.

# 오후 10시. 아파트 주차장에 다다랐을 무렵 휴대전화로 집안의 에어컨을 켠다. 10분 뒤 집에 들어온 미미씨는 거실 벽에 있는 컨트롤러의 스크린을 두드려 조명을 켜고 커튼을 열었다. 방과 주방.거실 천장에서 나오는 음이온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준다.

올해 주택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웰빙 아파트가 완공됐을 때의 생활을 가상으로 꾸며봤다. 우리 생활 전반에 퍼져 있는 웰빙(well-being)붐에 편승해 건설회사들이 앞다퉈 신상품을 선보인다. 인체에 무해한 친환경 자재를 쓴 건강 아파트부터 웰빙족을 위한 녹지공간과 스포츠센터,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통제할 수 있는 첨단 홈네트워크 시스템까지 발전 속도가 눈에 보인다.

◆친환경 자재로 건강하게=새 아파트의 마감재.접착제 등에서 인체에 해로운 포름알데히드 등 유해물질이 배출된다는 '새 집 증후군'때문에 친환경 자재 사용이 유행이다.

삼성물산은 주거 공간의 기본 기능을 열.빛.음.공기 등 10개 항목으로 나누고, 이 성능을 등급화해 고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대림산업은 '에코 프로젝트(eco project)'를 올해 핵심 연구과제로 내걸었다. 생태 연못, 광촉매, 음이온 발생 등 인체에 해롭지 않은 아파트를 만들 예정이다.

대우건설은 지난 3월 분양한 서울 도곡 푸르지오 아파트에 참숯 초배지, 친환경 벽지와 함께 반신욕 욕조 덮개를 제공키로 했다.

◆단지 차별화로 생활을 윤택하게=웰빙 추세는 단지 조성과 내부 평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개울과 산책로, 대규모 스포츠 시설 등은 이제 웬만한 단지에는 다 있다.

LG건설은 조만간 분양하는 대구 상인동 LG상인자이에 300평 규모의 골프연습장과 에어로빅실, 헬스시설 등을 갖춘 피트니스센터를 마련했다. 포스코건설은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 더샾 아파트에 단지 전체를 순환하는 1km의 조깅트랙과 옥상 정원, 지압 보도 등을 조성한다.

쌍용건설도 올 초 분양한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 쌍용스윗닷홈에 스포츠센터와 DVD룸.PC방.노래방.독서실 등 멀티미디어센터를 넣고, 지상에는 인라인스케이트장과 암벽 등반을 즐길 수 있는 X-게임장, 게이트볼장 등을 만들기로 했다.

◆첨단 홈네트워크 시스템=홈네트워크는 1990년대 말부터 이어진 사이버.초고속 정보통신 아파트가 진일보한 형태다. 종전까지 웹패드를 통해 인터넷이나 커뮤니티, 음식 주문, 원격 검침 기능에 그쳤다면 이제는 전화 한 통화로 집안의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대림산업 등은 인터넷으로 건강 상담과 정기 검진이 가능한 원격 영상의료시스템을 개발, 신규 분양하는 아파트에 설치할 예정이다.

동문건설은 자체 홈네트워크 브랜드인 '르네트'를 출시했다. 종전 원격 검침 기능 등에 입주자 건강을 위해 산소.음이온발생기, 공기청정 기능을 추가했다. 혈압.맥박.혈당수치.체온을 측정하는 센서가 달린 화장실 비데도 선보인다. LG건설은 최근 개.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들을 관리해주는 원격 서비스를 개발했다. 출장.여행 등으로 집을 비울 때 인터넷으로 애완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다.

◆전원주택.펜션도 웰빙 붐=웰빙 열풍은 주5일 근무제와 맞물려 전원주택과 펜션 등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전원주택 전문업체인 ㈜좋은집은 한국목조건축기술협회와 공동으로 경기도 용인시 신봉동에 건강주택 시범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8000여평에 50~60평형대의 주택 34개동을 짓는 것으로 인체에 해가 없는 친환경 자재만 사용한다. 입주 후에는 아파트처럼 실내공기의 질을 측정한 수치를 입주자에게 알려줄 예정이다.

◆분양가 상승 지적도=업계에 따르면 웰빙 아파트를 만드는 데 드는 추가비용은 평당 30만원선이다. 친환경 자재와 단지를 조성하는 데 평당 20만원, 홈네트워크 등 첨단 시설비가 평당 10만원 정도다. 32평형 아파트 기준으로 종전보다 960만원을 더 내는 셈이다.

추가 비용에 대한 경제성은 입주자 개개인의 만족도에 따라 달라 쉽게 평가할 순 없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웰빙 아파트가 지나친 분양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자신은 불필요하지만 어쩔 수 없이 돈을 지급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모임 이윤재 연구원은 "웰빙에 따른 분양가 인상의 타당성은 면밀히 검토해야겠지만 업체가 분양가를 올리고,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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