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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대통령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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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통령 1인에게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의 권력이 통합되어 있어 대통령 1인의 판단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좌지우지된다. 대통령선거는 도박을 하듯 흥행판에서 베팅하는 수준이다. 권력이 실질적으로 대통령에게 통합되어 있어 국회의원은 맥을 못 춘다. 그래서 해방 이후 지금까지 정당정치가 제대로 된 적이 없고, 국회와 국회의원의 중요성도 몰각되어 왔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국가정책의 중단·폐기가 빈번하고, 공무원 길들이기가 습관화되어 직업공무원제도 붕괴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분권형 대통령제’가 정치권에서 제기돼 왔다.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정부 수반인 총리가 국정운영에서 권력을 반씩 분점한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형태를 헌법학과 정치학에서는 ‘혼합제 정부(hybrid government)’-한국에서는 이원집정부제라는 이상한 용어로 통하지만-라고 부른다. 사실 혼합제정부를 택한 나라는 흔치 않다.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핀란드,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프랑스 정도다. 이들의 경우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만 총리는 의회에서 선출된다. 이 점에서 대통령과 총리 모두 의회가 선출하는 내각제와 외형상 차이가 있다. 그 밖에 대부분의 나라가 내각제를 택하고 있고 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일부 국가가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다.

인구 31만 명의 아이슬란드는 해외 자본으로 급성장을 누리다 최근 국가부도를 맞았다. 국가의 크기나 상황에 견주어 우리가 참고할 만한 나라는 아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은 의회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국정 운영을 하며 하원 해산권까지 갖는다. ‘준(準)대통령제(semi-presidentialism)’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실은 강력한 대통령제다. 다만 다수당의 당수를 대통령이 총리로 임명한다는 데 특색이 있다. 따라서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를 경우 동거정부(cohabitation)가 탄생한다. 대통령과 총리 간 업무분장이 애매하기 때문에 동거정부에서 총리와 대통령의 견해가 다르면 결국 대립·갈등하게 된다. 그동안 있었던 세 번의 동거정부에 대해 ‘정치적 잡탕’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7년이던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줄여 대통령과 하원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개헌을 했다. 이를 과연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아일랜드, 핀란드, 포르투갈, 오스트리아는 인구 400만~1000만 정도의 소국들로, 실제 국가 운영은 모두 총리가 주도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안정된 정당을 바탕으로 의회에 의해 총리와 내각이 구성되고, 행정부는 의회의 지지를 받아 국정을 운영한다. 정부와 의회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생기는 것은 정치위기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나 있다. 그래서 이들 나라 학자들은 자기네 정부를 혼합제정부가 아니라 내각제정부라고 한다. 더블린, 리스본, 빈 등에서 만난 학자들과 의회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가 그렇다.

대통령은 직선이지만 국내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상징적 권위체로 존재한다. 의회해산권을 갖고 있더라도 평상시에는 행사하지 않는다. 일부 국가에서는 법률안 거부권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통령은 국가와 정파를 초월해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국민은 직접 선출하는 데 자부심을 갖고, 따라서 존경심도 생긴다고 한다. 총리 이외에 대통령까지 정치세력끼리 정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처럼 분권형 대통령제라 하더라도 사실은 기본적으로 내각제로 작동하고 있다. 결국 내각제라고 하는 것은 총선으로 의회와 대통령, 총리를 모두 선출하는 일원적 내각제와 총선으로 의회와 내각을 구성하되 대통령은 직선하는 이원적 내각제로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국가 운영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50대 50으로 권력을 나눠 갖는 나라는 결국 없는 셈이다.

결국 논의는 대통령제의 유지냐, 내각제로 가느냐로 정리된다. 내각제로 갈 경우 일원제냐 이원제냐의 문제는 우리 현실과 미래에 어느 것이 합당한지 따져 선택할 일이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