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조>지도자 사과와 민주주의의 한계-홍콩명보 2월26일자 논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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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에서는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두 전임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자신의 부정부패 문제를 사과한 데 이어 현 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 25일 자신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가운데 자신의 아들과 부하직원들이 한보사태와 관련된 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점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함으로써 국가지도자의 이같은'사과'는 한국의 또 다른 정치문화로 정착되는 듯한 인상이다.

과거 수년동안 여러명의 측근이 부패사건에 연루돼 사직함으로써 '청렴'을 부르짖었던 金대통령 자신도 이제 과연 얼마나 깨끗한지 의문이다.

金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차남 현철(賢哲)씨를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외국으로 유학시키겠다고 말했다.그러나 이같은 조치는 한국 반대야당의 주장처럼 일단 국내의 반발과 아들에 대한 공격을 막기 위해 취한 것으

로도 해석할 수 있다.

서방국가들은 현대의 민주정치제도가 과거의 전제정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문책성(問責性)'을 갖춰 제도적 우월성을 확보했다고 믿고 있다.대의(代議)민주정치가 전제정치에 비해 한걸음 앞선 제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최근 자리잡고 있는 정치지도자의'사과문화'는 민주정치와 전제정치를 구별해주는'문책성'의 경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그렇게 분명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한국과 일본 또는 영국과 미국등 민주국가의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에 바빴다.이들 지도자는 자신의 과오에 대한 은폐를 거듭하다 한계에 부닥칠 경우'사과'에 나섰던게 상례다.일본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전

총리와 뉴트 깅그리치 미국 하원의장이 최근의 대표적 예다.

더욱 유감인 것은 이들 지도자는 자신의 과오를 국가이익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숨기다 수십년이 지난 뒤에 이를 공개한다는 사실이다.미.영 양국이 지난 50,60년대 인체를 사용한 핵실험 자료를 최근에야 공개한 사실은 이를 웅변해주

고 있다.

이같은 결점을 안고 있는 현재의 대의민주제도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결국 진정한 민주와 정의를 방해하는 행위임을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정리=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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