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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결과에 대처하는 부모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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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은 우리 학교 학업성취도평가(기말고사)날이었다. 오전 내내 시험을 대비하는 아이들의 의욕은 여느 중학생 못지않았다. 시험을 준비하던 지난 일주일이 그랬고 시험 날 아침까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 자리에 앉아 학원에서 나눠준 요점정리며 학습지에서 틀린 문제를 훑어보느라 교실 안은 평소 때와 달리 조용했다.

시험이 치러지는 1교시부터 4교시까지는 쉬는 시간에 제대로 화장실도 못가며 시험 준비와 문제 풀기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갈수록 아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렇게 시험이 끝났다. 몇 아이가 4교시 과학시험이 끝나자마자 달려 나왔다.

"선생님, 오늘 시험 점수를 알 수 있어요?"
"오늘은 알 수 없고 월요일엔 가능할거 같은데? 선생님도 채점할 시간이 필요하단다."
"엄마가 오늘 알아오라고 했는데요. 제 것만 먼저 채점 해주시면 안돼요?"
"저도요! 저도요! 엄마가 빨리 알아오라고 하셨어요."
"……."

그 아이들 중 또 몇 명은 점심을 먹은 후에도 내 주위를 빙빙 돌며 머뭇거리기에 다시금 반복하여 점수를 바로 알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줘야 했다. 시험이 끝나기 무섭게 실컷 뛰어놀 아이들을 생각했건만 모든 아이들이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잠시 바뀌어버린 교육 풍속을 망각하고 있었나보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반평균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초등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에겐 시험 점수가 교육 목표의 최우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더 재밌고 즐거운 수업의 준비를 위해 수업연구를 하지 학기말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내기 위해 학생들에게 공부 압박과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 교사의 그런 기대와는 달리 시험이 끝난 후 걱정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해질 때가 많다. 물론 학부모입장에서 아이의 시험 점수에 민감해 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을 사랑스런 자녀에게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도리어 아이의 성취 의욕을 지양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신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챙겨줄 필요가 있다. 이에 내 아이가 시험에 노예가 되지 않고 좀 더 시험에 의연하게 대체할 수 있는 지혜를 키울 수 있도록 시험이 끝난 후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은 것을 안내해주려고 한다.

1. 점수보다 편안함을 선물하라

아이가 시험 보고 집에 왔을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몇 개나 틀린 것 같니?’
‘친구OOO는 잘 봤니?’
‘반 친구 중 올백 받은 아이는 있니?’
‘시험 잘 봤니?’

라고 습관적으로 묻는다.
그러나 현명한 부모라면 무거운 마음으로 현관문을 들어선 아이에게 시험 얘기를 먼저 꺼내는 대신

"오늘 아침에 춥진 않았니?"
"시험 보느라 힘들었겠다."
"수고 많았네. 우리 ○○○. 간식 먹고 오늘 하루 푹 쉬렴."

라고 말하는 것이다. 결과를 묻기 보다는 과정에 대한 보상을 주자. 공부를 열심히 했던 그렇지 않든 시험 보는 자체로도 충분히 힘들었을 아이의 마음부터 헤아려 주어야 한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와 학원에서 시험에 시달린다. 시험의 종류도 횟수도 정말 많다. 시험을 본 후 부모가 먼저 시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의 표정하나만으로도 이미 부모들은 아이의 시험 결과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은가? 시험을 잘 봤을 때는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말을 꺼낼 것이고 시험을 잘 보지 못했을 경우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이미 아이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시험점수로 아이를 혼낼 경우 아이는 '공부는 부모를 위해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이가 들어오기 무섭게 미주알고주알 시험에 대해 묻기보다 아이 스스로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편안함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를 갖고 기다리자.

2. 틀린 문제를 곱씹어라, 맞은 문제도 곱씹어라

아이가 학원에서 본 학습지나 학교에서 실시한 이러 저런 시험지를 가지고 왔을 때 대부분의 부모는 점수부터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아이의 시험을 받아 본 부모의 반응은 크게 3부류로 나뉜다.

A타입 : 점수만 확인하고 아이의 잘잘못을 따지는 경우
B타입 : 점수를 확인 한 후 틀린 문제만 확인하는 경우
C타입 : 점수를 확인 한 후 틀린 문제뿐 아니라 문제 유형과 전반적인 시험 내용을 살펴 보는 경우

A타입의 부모는 결과지향주위로 아이에게 시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0점짜리 부모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주로 B타입에 속할 텐데 B타입의 부모의 반응은 근시안적이다. 아이의 더 높은 발전 가능성을 열어주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50점짜리 부모다. 100점짜리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C타입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 초등학교 단계의 교과 학습 내용은 주로 국민 공통 기초 수준의 내용이기 때문에 아이 교과서를 한번이라도 열어보았거나 조금의 관심만 있었더라면 누구나 C타입의 부모가 될 수 있다.

수학교과의 경우 가장 고전적인 방법인 오답노트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게 하고 덧붙여 비슷한 문제 유형을 부모가 즉석으로 직접 만들어 다시 반복 학습하도록 한다. 사회나 과학과의 경우에는 아이의 교과서를 가져오게 한 후 문제가 출제된 곳을 찾고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서 적어 놓거나 교과서에 지울 수 있는 연필로 직접 밑줄 그어 놓도록 한다. 탐구 교과의 경우 중요한 문제로 반복 출제되기 때문에 아이가 교과서에 줄을 그어가며 틀린 문제를 확인하면 각 단원에서 아이가 어려워하는 부분이나 중요한 부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험 문제(초등학교 3학년 2학기 과학 학기말평가 중에서)에

25. 달에 관한 다음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
① 달은 음력 1일부터 15일 경에 관찰하는 것이 좋다.
② 우리가 보는 달의 모양이 변하는 것은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이다.
③ 달이 뜨는 위치는 동쪽하늘이고 남쪽하늘을 거쳐 서쪽으로 진다.
④ 초승달→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 순으로 변한다.
⑤ 초승달은 해가 진 직후 동쪽하늘에서 더 뚜렷하게 관찰된다.

'옳지 않은 것'을 고르라고 한 문제를 틀렸다면 보기의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은 후 옳지 않은 내용을 옳게 바꾸어 바로 아래에 연필로 적도록 지도해보자. 반대로 '옳은 것은?'이라는 문제가 있다면 옳지 않은 4개의 문항을 옳은 문장으로 바꾸어 적어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는 똑같은 문제가 출제되었을 때 틀리지 않는 요령 익히는 것이 아닌 잘 알지 못했던 내용에 대한 수정 과정과 복습을 통해 해당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시험에서 많이 틀렸더라도 이런 '곱씹기 과정'을 성실히 수행한다면 아이는 충분히 해당 시험을 통해 평가하고자 하는 교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맞은 문제를 곱씹는 방법은 좀 다르다. 시험을 보는 중에 확실히 맞을 것 같으면 ★표 1개를 하고 어려워서 틀릴 것 같으면 ★표 3개를 표시해놓는 것이다. 채점을 하고 난 뒤에 틀린 문제는 위의 방법대로 하며, ★★★인 문제를 맞았을 경우(틀릴 줄 알았는데 맞은 경우) 비록 이번엔 운이 좋아 맞았지만 다음에는 틀릴 수도 있는 불완전한 지식이므로 문항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다시 풀어 두어야 한다. 시간이 경과된 후에 시험지를 받을 경우 시험 당시 기억을 되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시험 보는 중에 애매했던 문제와 어려웠던 문제는 표시해 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면 시험 점수는 70점이라도 시험 후 점수는 100점이 되는 것이다.

시험의 본질은 해당 교과를 통해 아이가 달성해야하는 목표 달성 여부를 확인하는 데 있다. 그러나 부모들은 아이의 실력을 측정하고 상대적인 위치를 파악하는 잣대로만 여기고 있다. 시험은 배움의 끝이 아니라 배워가는 과정 중에 일부로 부족한 부분과 알고 있는 정도를 점검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이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하자. 부모는 시험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시험의 본질적인 목적을 되새기고 현명한 시험 후 대처하는 방법을 안내해주어야 한다.

3. 시험점수에 과민반응하지 말아라

시험 성적이 잘나왔을 때 큰 축하를 받은 아이는 상대적으로 성적이 잘나오지 않았을 때 부모가 크게 실망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도리어 다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음에 대해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시험에 대한 부모의 과민한 반응은 아이의 자발적 성취의욕을 억제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부모의 과도한 반응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시험은 단지 부모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도구나 자신이 갖고 싶은 무언가를 획득할 수 있는 도구로 변질된다. 게다가 부모의 과민 반응은 아이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시험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거나 성취하지 못할 것에 대한 중압감으로 변질될 수 있다. 아이들이 겪는 시험에 대한 중압감의 주범은 그 아이들의 부모다. 그러므로 아이의 시험점수를 알았을 때 100점을 받았건 0점을 받았건 일부러라도 태연해질 필요가 있다.

내 아이가 100점을 받았다면

"우리 ◌◌ 100점 받았네. 정말 잘했다! 엄마가 뭐 사줄까?"
가 아니라

"우리 ◌◌ 이러한 것을 어려워했었는데 시험 때는 잘 풀었나보구나."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더니 좋은 결과를 얻었구나."

와 같이 반응해야한다. 느낌표와 물음표의 감탄 대신 지난 과정에 대한 인정으로 칭찬을 대신해보자. 이러한 칭찬만이 궁극적으로 아이의 성취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4. 시험점수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

사담이지만 이번 시험에서도 필자는 반 아이들 중 학원을 다니는 아이와 학원을 다니지 않는 아이들의 점수가 궁금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 과외를 시작하거나 학원을 보낸다. 그러나 기본 생활태도가 바로 잡히지 않은 아이가 시험 점수가 낮다는 이유만으로 학원에 보내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시험 결과로 매년 몸소 체험해왔다. 좋은 학원이 점수를 높여준다는 것은 부모들의 환상일 뿐이다. 이번 우리 반 아이들의 시험 결과를 분석해보니 다시금 분명해졌다.

부모들이 시험결과에 대처하는 가장 나쁜 방법이 바로 책임 회피와 책임 전가다. 시험을 잘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아이 스스로 자신의 학습과정에 대해 반성하고 시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숙고의 시간이 필요한데 부모는 이러한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보다는 아이의 시험 결과를 책임져줄 책임 전가자를 먼저 찾는다. 자연스레 부모는 학원이나 과외를 생각한다. 이러한 오류의 반복으로 아이는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게 되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기하게 된다. 아이가 시험을 못 보는 것은 자신 탓이 아니라 학원 탓, 과외 탓, 학교 탓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학업 성취도가 부진한 아이들을 데리고 개인적으로 보충 지도를 하던 중 어느 순간 아이 스스로 '아하!'하고 원리 같은 것을 깨닫고 좋아하는 모습을 종종 지켜보면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짧은 성취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번 방학만큼은 학기말 시험지의 점수를 받아들고 새로운 학원을 등록시키거나 학원을 갈아타기에 연연하기 보다는 우선 내 아이의 기본 생활태도와 공부의 목적, 시험의 의미를 이해시키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자.

갑자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요즘 우리 아이들을 보면 모든 것이 시험 점수에 결정되고 모든 행복이 성적순에 따라 온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렇게 아이들을 시험의 노예로 만드는 주범은 바로 우리네 부모들이다. 부모가 자녀의 시험에 대처하는 현명한 방법을 실천할 때 우리 아이들은 시험에 대해 좀 더 의연해질 수 있을 것이다.

김범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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