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성깔 좀 죽이려…” 세터가 스파이크 펑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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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황동일

프로배구 V-리그 삼성화재-LIG손해보험전이 열린 7일 대전 충무체육관. 1세트 24-24 상황에서 랠리 중 LIG손보 진영으로 공이 넘어왔다. 이영수가 엉겁결에 걷어올린 공을 리베로 한기호가 토스했지만 빗맞고 후위 쪽으로 떴다. 그 순간 세터 황동일이 뛰어올라 후위공격을 꽂아넣었다. 삼성화재는 물론 LIG손보 동료들까지 ‘세터가 백어택이라니’라는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다.

LIG손보 황동일(22·1m94㎝)이 세터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내년 2월 경기대 졸업 예정인 그는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신생팀 우리캐피탈에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LIG손보는 선수 3명을 내주고 황동일을 데려오는 3대1 트레이드를 했다. 팀에 합류한 지 이제 보름. 그는 공격수 뺨치는 공격력으로 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날 1세트 후위공격이 전부가 아니었다. 1세트 듀스 접전을 끝내는 LIG손보의 마지막 포인트도 황동일의 스파이크였다. 2세트에는 서브리시브가 나쁘자 2단 공격을 감행했다.

이날 황동일은 공격으로 3득점했다. 자제해서 이 정도였다. 지난달 26일 켑코45(옛 한전)전에선 1세트에만 팀 내 최다인 6점을 올렸다. 공격에 집착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경기 초반 내 공격이 먹히면 분위기를 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고교(평촌고) 시절 황동일은 지금처럼 공격적인 세터가 아니었다. 대학(경기대) 입학 후 이경석 감독이 공격 성향을 키웠다. 이 감독은 “공격을 시킨 건 먼저 ‘더러운 성깔’ 때문이다. 1학년 땐 감독 말도 안 들었다. 그런 성격을 공격으로 해소시켰다. 또 신체조건이 공격에 딱 떨어진다. 국내에선 드문 왼손세터(배구에서 왼손잡이는 라이트 공격수의 최적 조건인데 세터가 라이트와 같은 자리에 서기 때문에 왼손 세터가 공격에 유리)인 데다 키까지 크다”고 말했다.

공격이 전부는 아니다. 삼성화재-LIG손보전 주심을 봤던 김건태 심판은 “네트 위에서 보니 토스가 한쪽으로 몰리지 않고 사방으로 골고루 퍼지는 게 눈에 띄었다. 구질도 괜찮았다”고 평가했다. 남자 6개팀 주전세터 중 막내지만 8일 현재 세터 순위는 한선수(대한항공)-최태웅(삼성화재)에 이어 3위다. 이경석 감독은 “파이터 스타일이다 보니 모자란 잔기술과 섬세함만 갖추면 향후 대표팀을 끌고 가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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