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진 시시각각

힐러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오바마의 시대는 곧 힐러리의 시대다. 오바마-힐러리의 첫 번째 코드는 공익이다. 그들은 화려한 졸업장을 창고에 넣어두고 일단 공익에 뛰어들었다. 오바마는 하버드 로스쿨을 마친 후 높은 연봉을 마다하고 시카고에서 빈민운동에 몰두했다. 힐러리는 중산층에서 자랐지만 빈민과 인권에 관심이 많았다. 힐러리는 14세 때 이주민 농장 근로자의 육아를 돕는 운동에 참여했고,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을 들으러 갔다. 그녀는 명문 웨슬리대를 졸업하면서 논문으로 ‘빈민지역 사회활동에 관한 비교연구’를 썼다. 힐러리는 예일대 법대를 졸업하고 돈을 많이 버는 뉴욕 변호사의 길이 아니라 공익 업무에 종사했다. 1974년 1월부터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 자료를 조사하는 하원 법사위에서 실무진으로 일했다. 그러곤 역시 대형 법률회사를 포기하고 시골 아칸소주에서 공익 변호사 활동에 참여했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공립병원 설립을 도왔고, 어린이와 입양 아동의 학대 문제에 힘을 쏟았다.

오바마-힐러리의 두 번째 코드는 위기 극복이다. 오바마는 청소년 시절 인종차별에 괴로워하다 술과 마약에 손을 댔다. 그러나 그는 굳은 의지로 이겨냈고, 수도승처럼 공부해 오늘날의 터전을 이룩했다. 힐러리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남편 클린턴 대통령이 젊은 여자 르윈스키와 황음증(荒淫症) 행각을 벌였던 것이다. 검사는 클린턴의 아랫도리를 전부 다 벗겨냈다. 그리고 세상은 클린턴에게 돌을 던졌다. 보통의 여자였다면 돌에 맞는 남편을 바라보며 울화를 삭였을지 모른다. 아니면 백악관의 한구석에서 홀로 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물론 힐러리도 여자였다. 부부의 사랑과 가족의 안위를 벼랑으로 몰고 간 남편…. 그래서 그녀는 남편을 소파에서 재우고 말도 걸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원망을 마음속으로 다스리고 자신은 남편의 손을 잡고 날아오는 돌에 맞섰다. 남편의 행각이 샅샅이 드러나도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남편에 대한 탄핵 공세를 “보수세력의 음모”라고 맞받아쳤다. 기자회견장에서 클린턴이 눈가의 울음을 훔칠 때 하늘색 투피스를 입은 그녀는 박수를 치며 남편을 응원했다. 기자들이 보면 남편과 다정하게 걸어가며 환하게 웃었다.

힐러리의 이러한 행동이 계산된 것일 수도 있다. 세상의 편에 서서 남편에게 화살을 날리면 자신의 야망도 날아갈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실제 그랬다면 그녀는 아마도 상원의원이나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 그리고 오바마의 국무장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힐러리는 어릴 때부터 야망으로 단련된 여자였다. 주디스 워너의 전기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호를 쏘아 올렸다. 어린 소녀 힐러리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녀는 미 항공우주국에 편지를 보냈다. “우주인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으려면 무슨 준비가 필요하나요.” “소녀는 신청할 필요가 없다”는 답장에 힐러리는 무척 화를 냈다고 한다.

오바마를 보면서 우리는 한 흑인의 성공에 전율했다. 힐러리를 보면서 나는 한 여성의 성공에 전율한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일관되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위기가 닥쳤으나 그녀는 남편과 자신의 미래를 감싸 안았다. 똑똑하기로 따지면 힐러리만 한 여자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처럼 현명한 여자는 흔치 않다. 공동체를 걱정했고, 위기를 이겨낸 힐러리…. 그녀는 그런 용기로 오바마와 어우러져 미국을 넘어 인류의 시련과 맞서야 한다.

김진 논설위원

[J-HOT]

▶ 퇴출 얘기 뒤숭숭…"1순위는 C플레이어?"

▶ '수의도 없이 헌 궤짝에…' '35kg 노숙자'의 마지막길

▶ 조영남 "예수만이 우리를 구원시킨다고 믿지 않아"

▶ 최진실 아이들 양육·재산관리 "유족이 맡기로" 합의

▶ "盧 아들 결혼식때 친인척 행세하려고 100명 사진촬영"

▶ 10·26 당시 김재규가 범행에 쓴 권총 알고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