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과 네트워크가 최고 무기 소통 않는 옹고집형 '퇴출 1순위'

중앙선데이

입력 2008.12.08 16:15

업데이트 2008.12.08 23:51

중앙SUNDAY

국내 굴지의 A중공업에 근무하던 김한길(49·가명) 상무는 얼마 전 인천국제공항 로비에서 휴대전화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일주일 휴가를 내고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중2 딸 아이와 로스앤젤레스로 가려던 참이었다. 그는 “여행 내내 아무 말도 못하고 가족에게 몸이 안 좋다는 핑계만 댔다”며 씁쓸해했다.

기술본부에서 일했던 그는 2년치 연봉을 약속 받았다. ‘동종 업계에 재취업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다. 김 상무는 그동안 우직하게 연구개발에만 매진해 온 것을 후회하고 있다. “대기업 임원이라는 게 어차피 의자 빼앗기 게임인데…. 조금 더 사내 정치를 했다면 2~3년은 더 버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공기업 B사 15년차인 오문중(42·가명) 차장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도 요즘 사내 흡연실 찾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노동조합 사무실에도 가끔 들른다. 그는 “본능적으로 정보가 흐르는 곳을 찾아 다니는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같은 직장에서 맞벌이를 하는 그로선 구조조정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외환위기 당시 비정규직 사원→사내 부부→인사고과 순으로 정리해고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적 실물경제 침체로 번지면서 구조조정이 코앞에 닥치는 분위기다. 이미 일부 기업에선 감원 칼바람이 불고 있거나 조용히 명예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이럴 때 직장인이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인사 전문가들은 일단 ‘기업인에게 사람에 대한 애정은 무한대’라고 강조한다. 컨설팅업체 한국왓슨와이어트의 김광순 사장은 “구조조정을 즐기는 기업인은 아무도 없다”며 “이 기회에 사람을 솎아 내자고 작정한다면 그것은 신뢰를 깨는 일로 기업으로선 자살행위”라고 잘라 말했다. C그룹 인사 책임자인 정성모(54·가명) 부사장은 “함부로 사람을 잘랐다가는 로열티에 금이 가고, 한번 손상을 입으면 쉽게 치유되지 않더라”며 “이것이 외환위기가 남긴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사내 합의가 이뤄졌을 때에만 인적 구조조정이 설득력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구조조정 대상에 놓일까. 정 부사장은 “단순히 인사고과만 따지는 게 아니다”고 전했다. 그는 구조조정 사업군에 속하면서 업무 대체가 가능하고 평소 불만이 많은 사람이 감원 리스트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D사의 인사팀장인 김한주(42) 부장은 “상사보다 동료·부하 직원의 다면 평가를 반영한 뒤 고과 평점이 낮은 이른바 ‘C 플레이어’를 퇴출시키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합의가 돼 있다”고 밝혔다.

대개 ▶거창한 프로젝트를 제안한 뒤 결실을 못 보는 용두사미형 ▶상하좌우 커뮤니케이션 없이 고집만 내세우는 옹고집형이 주로 대상이 된다는 게 김 부장의 말이다. 그는 이어 “노조와 협의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부적응 사원은 금방 드러난다”고 덧붙였다.반대로 확실히 살아남는 조건은 무엇일까. 인사 전문가들은 ▶두드러진 실적을 냈거나 ▶해당 업무를 수행할 ‘대체 인물’이 없거나 ▶함께 퇴사하려는 동료·부하가 많은 경우를 꼽았다. 김광순 사장은 여기에 ‘일하는 자세’를 추가한다. “아무리 회사가 힘들어도 자세나 표정·행동이 바른 사람은 쉽게 내치지 않는다.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이런 때일수록 적극적으로 비즈니스 제안을 하고 고객 접촉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

사적 네트워크 구축도 중요하다. 정 부사장이나 김 부장은 “현실적으로는 사적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교나 대학 동문회 등에서 얻은 ‘내부 정보’가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김 부장은 “그룹 경영기획실에서 근무하는 대학 동창한테 총수의 경영방침을 듣고 미리 관심 사업부로 옮긴 ‘선수’들이 두각을 보이곤 한다”고 말했다. 정 부사장은 “사내뿐만 아니라 자기 업무 분야에서 타사 사람과 전문가 네트워크를 돈독히 해 놓는 것도 나중에 아주 힘이 된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테크닉’도 생존전략이 될 수 있을까. 가령 휴가 때 업무 체크차 출근한다거나 한밤중에 부서장에게 전화 보고를 하는 등 ‘튀는 행위’를 하는 경우다. 이에 대해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은 “일에는 소홀한 채 정치력만 발휘하려는 것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윤 총장은 그러나 “기업에선 외향적인 사람이 성공하게 마련”이라며 “사적·공적 네트워크 활용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도표 참조>

“자기 평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평소 성과를 기록해 뒀다가 연말 고과평가 때 정리해 제출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중요하다. 상사는 단순히 ‘최선을 다하겠다’가 아니라 ‘반드시 해내겠다’고 말하는 부하를 신뢰한다. 업무능력과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총합이 직장인의 생존 여부, 나아가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이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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