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요, 기운이 없어…" 마지막 여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중앙선데이

입력 2008.12.08 12:49

업데이트 2008.12.08 23:53

중앙SUNDAY

겨울은 노숙자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계절이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굶주린 몸뚱이 하나로 견뎌 내야 한다. 특히 경제위기가 불어닥친 올겨울은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그 어느 해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일 것이다. 지난달 24일 오후 1시20분 경기도 고양시 벽제 화장터. 꺼져 가는 목소리로 배고픔을 호소하다 숨진 50대 노숙자의 시신이 불길 속에서 세상과 이별했다. 지금 그의 육신은 한 줌 뼛조각으로 변해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공원묘지 입구의 조립식 가건물에서 혹시나 찾아올지 모를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서만 매년 300명 안팎으로 발생하는 무연고 시신의 운명 중 하나다. 살아서도 외롭다가 죽어서도 냉기 가득한 곳에 버려진 남자의 마지막 순간과 흔적들을 추적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공원묘지에 있는 무연고 추모의 집 내부. 무연고 시신 유골함들이 철제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추모’라는 이름을 달긴 했지만 납골당이라기보다 썰렁한 창고 분위기를 풍긴다. 최정동 기자

10월 14일 오후 12시30분 서울 서교동 H아파트 지하 1층 사우나 탈의실. 보통 사람이라면 점심 식사가 한창인 시간에 남루한 항공점퍼에 면바지를 입은 남자가 갑자기 쓰러졌다. 놀라서 몰려든 사람들에게 그는 꺼져 가는 목소리로 도움을 호소했다. “배가 너무 고파요. 기운이 없어….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사우나 종업원 양모씨는 “그 남자가 추위를 피해 사우나에 몰래 들어와 하룻밤 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그릇 밥 대신 119구조대가 출동했다. 그것이 세상 인심이고, 시스템이다. 그는 119구급차에 실려 가면서 신원을 묻는 구조대원에게 자신의 이름 ‘김봉수’와 생년월일 ‘1956년 10월 12일’을 겨우 말했다. 그의 호주머니엔 신분증은 물론 동전 한 닢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세상은 김씨와 같은 사람을 ‘무연고자’라고 부른다.

그가 이송된 곳은 서대문 사거리에 있는 적십자병원 709호(무연고 행려병자 전용 병실). 이곳에도 그의 소원인 ‘밥’은 없었다. 대신 포도당 링거 주사가 그의 정맥에 꽂혔다. 어느 병원이든 환자가 중한 검사를 받으려면 금식해야 한다. CT와 X선을 찍었다. 간암 4기,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됐다. 간질과 급성췌장염도 발견됐다. 김씨는 입원 이틀 만에 혼수상태에 빠졌다. 5층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그는 지난달 5일 오후 1시50분 고단한 생을 마감했다. 직접 사망 원인은 ‘심실빈맥으로 인한 저산소상 뇌손상’. 심장의 기능이 서서히 멈추면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뇌손상을 일으켜 사망했다는 얘기다. 20여 일 동안 김씨에게 들어간 병원비는 모두 1000만원. 김씨가 살아 있었다면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거금이었다.

고아로 자라 무연고로 끝낸 삶
김씨의 ‘호사’는 그걸로 끝이었다. 병원도 김씨의 가족을 찾지 못하면 나라에 비용을 청구하든지, 그게 안 되면 손실로 처리해야 할 판이다. 김씨의 시신은 기저귀만 남긴 채 누웠던 침대 시트 한 장에 싸여 곧바로 병원 장례식장 지하 1층 안치실로 옮겨졌다. 그는 다시 20일을 섭씨 3도의 냉장고인 이곳에서 머물러야 했다. 관련법에 따라 경찰이 김씨의 연고자를 찾는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김씨의 지문을 채취했지만 아무런 신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혹시나 해서 찾아본 전과기록에 조그만 단서가 나왔다. 김씨가 20세던 76년 절도미수죄로 동대문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거기에는 김씨가 불러준 고향 주소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361번지’가 적혀 있었다(주소를 찾아보니 외사리는 속리산 기슭의 마을이었다. 마을 이장에게 물어봤지만 그 번지에는 민가가 없었다).

경찰 추정에 따르면 김씨는 고아였다. 지문을 조회해도 주민등록번호가 나오지 않는 것은 지문을 찍고 주민등록증을 받는 만 17세가 되기 전에 보육원을 뛰쳐나왔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 이후 좀도둑질과 노숙을 하며 지금껏 살아온 것이다.

수의 없이 침대 시트에 싸여
지난달 24일 오전 10시30분 어둡고 차가운 안치실에 누워 있던 김씨의 얼굴에 빛이 들어왔다. 경찰의 ‘무연고 확인’에 따라 화장터로 가야 할 시간이 됐다. 그의 앞에 놓인 관은 시중에서 구할 수조차 없는 4만원짜리 싸구려. 니스칠조차 안 된 데다 표면 곳곳이 검게 색이 바래 관이라기보다 헌 궤짝 같은 모습이다. 인부 두 명이 침대 시트 양쪽 끝을 잡고 김씨의 시신을 관에 넣었다. 저승길에 가기 전 몸을 닦고 수의를 입는 것도 그와 같은 무연고 시신엔 ‘해당사항 무’다. 대신 생전에 입던 때 묻은 점퍼와 바지, 그리고 운동화가 검정 비닐봉지에 싸여 김씨의 관에 같이 들어갔다. 김씨의 관 뚜껑은 다른 사람들처럼 ‘닫히는’ 게 아니라 ‘못질’이 된다.

관 뚜껑이 얄팍해 못질을 하지 않으면 열릴 수 있어서다. 가장자리를 따라 녹슨 쇠못 8개가 ‘땅 땅 땅~’ 박혔다. 관 위에는 십자가나 고인의 이름을 누빈 보자기 하나 덮여 있지 않다. 대신 장의사가 유성펜으로 휘갈겨 쓴 이름 석 자 ‘김봉수’만 적혀 있을 뿐이다(서울시는 무연고 시신의 장례비용으로 대행업자에게 48만원을 지급한다).

운구(運柩)는 간단하다 못 해 처량하다. 여윌 대로 여위어 35㎏에 불과한 몸무게와 얄팍한 관 때문에 인부 두 사람이 앞뒤로 간단히 들어 옮긴다. 영안실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장의차는 회색 화물 봉고차다. 김씨의 시신을 담은 관이 마치 짐짝처럼 좁은 화물칸으로 밀려 들어간다. 그나마 저승길 동행이라도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김씨의 관 양 옆으로 똑같은 관 두 개가 먼저 실려 있다. 하나는 신대방동 보라매병원, 또 하나는 양평동 중앙장례식장에서 왔다. 한 사람은 영등포역 대합실에서 쓰러진 50대 남자 행려병자였다. 경찰이 동생과 누나를 찾아냈지만 이들은 “지난 20년 동안 만난 적이 없다. 연락하지 마라”며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다른 한 사람은 성산동 불광천 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무연고 시신이다.

저승길도 쪽문으로 들어서
경기도 고양시 시립승화원(옛 벽제화장장)은 대형 운구버스와 검정 리무진으로 가득 찼다. 수백만원짜리 향나무 관과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봉고차가 도착했다. 다른 망자들이 자줏빛 벨벳 관보에 덮여 화장장 가운데 입구로 들어서는 사이 김씨는 왼쪽 구석 문을 이용해야 했다. 보자기 한 장 덮여 있지 않은 초라한 관이 들어오면 흉측하다는 여론 때문이다. 불구덩이로 들어서기까지 울어 주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김씨의 시신이 재가 되기까지는 1시간30분도 걸리지 않았다. 탈 것조차 제대로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 시신은 최대 2시간 정도 타야 한다. 뼛조각으로 변한 김씨의 시신은 분골 과정도 거치지 않고 흰색 플라스틱 사각형 유골함에 들어갔다.

가족 기다리는 4747기 유골함
무연고 시신은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화장 후 10년 동안 봉안(奉安)돼야 한다. 나중에라도 혹시나 유족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유골함에 담겨 화물 봉고차로 다시 20분을 달려 광탄면 용미리 공원묘지에 도착했다. 김씨가 들어갈 납골당은 ‘무연고 추모의 집’이라는 근엄한 이름을 단 조립식 패널 건물이다. 밖에서 보기엔 교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창고 모습이다. 자물쇠로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실내는 흡사 자재창고 분위기다. 약 500㎡(150평) 공간에 높이 2m짜리 철제 선반 60개가 줄지어 있다. 김씨의 유골함은 오른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좁은 창문에서 스며든 햇살 한 줌이 플라스틱 유골함 위로 떨어졌다.

반대편에는 10년 전인 98년에 들어온 유골함들이 쌓여 있다. 이들은 조만간 용미리 공원묘지 한구석에 부어져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추모란 찾아볼 수조차 없는 추모의 집에는 모두 4747기의 유골함이 ‘봉안’ 아닌 ‘저장’돼 있다. 혹시나 올지 모를 가족을 기다리며. 김씨도 플라스틱 유골함 속에서 뼛조각으로 남아 앞으로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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