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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판소리, 세계인이 즐길 수 있어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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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값진 자산이지만 세계를 향해 자랑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지요. 세계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다듬고 가꿔나가야 합니다."

미국에서 9년째 영어 판소리를 공연하고 있는 박찬응(朴贊應.53)씨. 그는 판소리가 지난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축하할 일이지만 그 대신 '세계인이 함께 즐기도록 만들어야 할' 새로운 의무가 생겼다고 말했다.

朴씨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의 한국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판소리 공연은 연구와 강의를 하는 틈틈이 이뤄지는 그의 또 다른 직업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대학을 중심으로 약 70차례의 판소리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는 지난주 대구 계명대가 마련한 한국학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국제무대에서의 판소리'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미국에서 했던 공연을 비디오로 소개했고, 판소리 심청가의 한 소절을 직접 불러보기도 했다.

그의 판소리 공연은 '소리(노래)'는 우리 말로, 극중 상황을 전달하는 '아니리(말)'는 영어로 해 진행된다. 현지인들의 이해를 돕고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아니리의 내용은 과감하게 의역된다. 예컨대 심청이 아버지를 찾기 위해 장님들을 초대하는 대목에서는 '왕이 왕비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잔치에 파격적인 예산을 책정했다', '부시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의 설명이 나온다.

朴교수는 판소리의 국제화를 위해 흥보가와 심청가의 아니리를 영어로 번역했다. 수궁가와 적벽가는 현재 작업 중이다. 朴교수는 지난해 미국 내 한 극단의 요청으로 '아동창극'이란 새로운 장르를 무대에 올렸다. 하와이 등지를 돌며 공연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란 실험작은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내년 3월엔 알래스카 페스티벌에 참가해 알래스카의 토속적 이야기를 서양의 곡조와 판소리로 접목하는 새로운 실험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와이대에서 한국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朴교수는 1976년 인간문화재 정권진씨를 사사한 정통 소리꾼이다. 판소리에 입문하기 전엔 70년대의 금지곡 '섬 아이','평화로운 강물'을 부른 포크 가수였다. 대학 1년 후배인 '아침 이슬'의 가수 양희은을 만나면서 노래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대구=송의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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