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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경제首長 뒤늦은 '책임통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한보사태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는 국민들을 한없는 실망감으로 몰아넣었다.통치권의 핵심과 정.관계가'외압'으로 작용한 건국후 최대의 금융스캔들로 짐작하고 있는 국민정서와는 거리가 한참 멀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정책관련 공직자가 수사선상에 한 사람도 오르지 않은 사실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보철강을 무리하게 지원해온 당국자들이 그동안 내보인'책임회피'행태가 오버랩되면서 검찰발표 내용에 대한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한승수(韓昇洙)경제부총리는 지난 18일 한보철강 당진공장을 방문,“한보 사태에 대해 경제수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했다.그는“한보에 대출이 계속 나가도록 방치한 금융감독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재정경제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새삼 강조했다.

경제정책의 총사령탑으로서 한보 부도이후 한달만에 나온'책임 통감'이었다.이날 발언은 그가 17일 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민간자율시대 운운하며 정부책임을 부인한뒤 빗발친 비판여론을 의식해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책임회피성 보고에 의원들이 벌떼같이 일어나“정부당국자중 한 사람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은데 대해 국민도 실망하고 국회도 실망했다”고 몰아붙였다.언론에서도 이를 받아 정부의 면피성 대국회 보고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같은 홍역을 치른후 나온 韓부총리의 뒤늦은'책임 통감'이기에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우리경제가 시장경제와 민간자율시대를 지향하고 기업활동에 대해 정부의 규제와 간여를 최소화 해야한다고 믿고 있는 기자로서는 韓부총리의 국회 보고내용에 대해 일응 수긍할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길을 막고 물어봐도 한보사태가 시장경제 원칙에 의해 이뤄져왔다고 믿는 국민들이 있을까.韓부총리의'민간자율과 한보'논리는 그야말로 견강부회(牽强附會)가 아닐까 싶다.

공직자들을 감정적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문민정부 출범후 국정운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되고 비선(비線)조직에 의해 한보같은 주요정책이 입안.시행된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한보사태에 쏠려있는 국민적인 배신감을 감안할 때 韓부총리이하 경제정책당국자들의'책임불감증'은 어느 형태로든 치료돼야 한다는 생각이다.이번 기회에 이를 치유하지 않을 경우 나라경제의 앞날은 정말'절망'일 뿐이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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