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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블로그 경제학’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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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정책 라인이 정해진 데 대한 그의 논평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굿바이 졸병들(hacks). 뭔가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오는 걸 환영한다”고 썼다. 오바마 경제팀의 면면은 부시 경제팀과 달리 잘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을 그렇게 표현했다. “새로운 경제팀은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읽어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쓴 이 책은 케네디·존슨 대통령 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휘말리게 된 사연을 분석했다.

이에 대해 부시 경제정책에 깊이 간여한 맨큐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자신의 블로그에 ‘전문가와 졸병을 다시 정의하며’라는 글로 맞받아쳤다. “나도 폴 (크루그먼)처럼 오바마 경제팀 인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때 등용된 경제학자들의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올해 경제학 교수들의 학문 업적 순위를 근거로 댔다. 부시 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회의 의장을 지낸 자신을 크루그먼이 공개적으로 조롱했다고 여겼는지 발끈한 것이다.

그러자 크루그먼은 “친애하는 그렉(그레고리의 애칭). 나는 팀 가이트너(재무장관 지명자)와 존 스노(전 재무장관)를 비교한 것이지 당신을 말한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두 석학이 블로그에서 일합을 겨룬 사건은 단박에 ‘블로그스피어(블로거들의 세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글렌 레이놀즈 테네시대 교수와 경제 평론가 마크 케이시 등 유명 논객들은 이들의 글을 자기 블로그에 퍼날랐다. 또 크루그먼과 맨큐는 이후에도 미국 경제의 방향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이어갔다. 네티즌들에겐 블로그를 통한 석학들의 다툼이 더할 나위 없는 경제 공부가 되고 있다. 이들의 논쟁이 미국 경제위기를 이해하는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블로그 경제학’에서 제시된 경제위기 해법들은 다양하다.


크루그먼과 맨큐는 모두 정부의 역할을 존중하는 케인스주의자다. 그러나 이들이 블로그에 제시한 현 경제위기의 원인과 해법은 상이하다. 크루그먼은 “과감하게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 최소 600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맨큐는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 연방준비위원회(FRB)가 쓸 처방이 더 남아 있다. 장기금리의 인하다”고 맞섰다. 기본 처방이 다른 가운데서도 공감할 건 확실히 공감했다. 크루그먼이 “시장의 자본조달 비용이 많이 들어 경기 침체를 불러온다”고 지적한 데 대해 맨큐는 “그런 우려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화답했다.

이 두 사람의 블로그 논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치열하게 블로그 논쟁을 벌여왔다. 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을 놓고 벌인 설전이 그 하나다. 블로그 매니어인 크루그먼과 맨큐의 논쟁은 블로그의 관심순위 상위권을 다퉈왔다.

블로그로 소통하는 경제학자들은 적잖다.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현 경제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열성 블로거다. 그는 지난달 26일 ‘절망적 시기에 절망적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절망적 수단들’이라는 글을 올렸다. 여기서 “FRB는 더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정책을 과감하게 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규모 자금 투입과 제로금리는 기본이고 국채와 회사채도 대거 매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괴짜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 시카고대 교수는 대니얼 해머메스 텍사스대 교수, 저스틴 울퍼스 펜실베니아대 교수 등과 공동으로 블로그를 운영한다. 레빗은 최근 블로그에서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미국 자동차 ‘빅3’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3사가 살아남으려면 임금을 낮추거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노사가 화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작다. 그래서 파산밖에 길이 없다”고 힐난했다.

『경제학 콘서트』라는 책으로 유명한 팀 하퍼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논설위원의 블로그도 꽤 알려져 있다. 그는 블로그에서 현 경제위기를 모노폴리라는 보드게임에 빗댔다. “돈이 너무 많이 풀리고, 규칙이 쉽게 자주 바뀌며, 모든 사람이 나가떨어져야 게임이 끝난다는 점에서 모노폴리와 현 경제위기는 닮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노폴리 게임의 은행은 결코 파산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현실보다 더 낫다”고 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블로그를 통해 쉬운 글로 대중에게 경제를 설명한다. 노택선(경제학) 외국어대 교수은 “경제는 심리적 요소가 중요하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해 한국의 ‘미네르바 신드롬’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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