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테스트하려 萬원권 위조 빗나간 컴퓨터 천재-열달간 181장 모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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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돈이 목적이 아니라 내 컴퓨터 실력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컴퓨터를 이용해 그린 1만원권 위조지폐 1백81장을 시중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에 입금한뒤 현금을 빼돌린 혐의(통화 위조와 위조통화 행사)로 검거돼 광주 서부경찰서에 의해 구속영장이 신청된 김광철(金光澈.24.서울은평구갈현2동.사진)씨의 경찰 진술이다.

金씨의 도전은 일단 성공했다.은행창구와 무인점포에 설치된 현금자동입출금기의 위폐 인식능력이 크게 떨어져 컬러복사기나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신종 위조지폐범죄에 무방비상태였기 때문이다.

金씨는 14일 오후 광주시서구광천동 버스종합터미널에 설치된 J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에 컴퓨터로 만들어낸 위폐 1백65만원을 입금하고 다른 기계에서 70만원을 인출하는등 두차례에 걸쳐 86만원을 빼낸 혐의. 92년 서울 D고교를 졸업한뒤 서울 B시스템회사에서 일하며 본격적인 그래픽공부를 해 정밀그래픽에 능한 金씨는 10년 경력의 컴퓨터 천재.지금은 자신의 방에 꾸며놓은 작업실에서 제작한 CD롬으로 한달에 2백여만원을 벌고 있다.

이런 金씨가 위조지폐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1년전쯤“한국의 지폐가 세계에서 가장 위조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金씨는 이때부터 인텔 칩을 장착해 조립한 펜티엄급 데스크톱 컴퓨터와 17인치짜리 IBM 모니터등 최신장비를 동원해 10개월동안 하루 3~4시간을 씨름한 끝에 자신의 컬러프린터에서 1만원권 1백81장을 찍어내는데 성공했다.

성능이 좋은 복사기를 이용하거나 화상을 그대로 컴퓨터에 입력해주는 고해상도 스캐너를 쓰면 1시간도 안걸릴 일이었지만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고 세종대왕의 눈썹 하나까지 일일이 밑그림을 그리고 색깔을 입혔다.

金씨가 만들어낸 1만원권에는 위폐 감식을 위한 은선(隱線)과 빛에 비치면 드러나는 음화(陰畵)가 없어 육안으로는 식별이 가능하지만 현금입출금기의 인식시스템에는 감지되지 않았다.

이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인식시스템이 처음부터 외국지폐에 맞도록 생산된 것이라 지폐의 크기.모양.금액등은 감지할 수 있으나 정교하게 만든 위조지폐를 가려낼 수 없었기 때문. 실제로 金씨가 입금한 1백65장은 정상입금된 것으로 처리,이날 오후4시 宣모(30.여)씨가 5만원을 인출해 경찰에 신고하기 전까지 드러나지 않았고,11일 서울갈현동에서 16장을 입금한 사실은 金씨가 자수한뒤 진술을 통해서야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위조지폐 모방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현금자동입출금기의 인식시스템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광주=양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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