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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떡값'과 '뇌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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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직자가 받은.떡값'이 뇌물일까.한보사태에 관한 수사가 공직자의 비리쪽으로 쏠리면서 엄청난 액수의.떡값'이 뇌물인지의 여부가 다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장학로(張學魯)사건때 검찰은 이미 엄청난 금액의 돈도.떡값'이란 명목으로 면죄부를 달아준 전력이 있다.이번 한보비리 수사에서도 정치인들이 받은 거액의 돈이 떡값인지의 여부는 혐의를 받는 정치인들의 생사를 좌우할 판정기준이 될 공산이 크다.
사전적 의미에서 떡값이란 설이나 추석명절때 회사 등에서 직원에게 주는 특별수당을 말한다.떡값을 받아본 봉급생활자라면 공감하겠지만 이런 의미의 떡값은 명절을 지내는데 소용되는 비용을 메울만한 액수가 결코 아니다.정말 필요한 떡을 차 리기에 흡족할만한 정도의 액수다.가족들의 떡배를 채울만한 분량의 떡을 사고나면 소진될 그런 정도의 돈이 떡값이다.
떡값이 추석이나 연말연시에는 사교적 의례에 맞춰 하는 선물로전용되면서 폭넓은 사교관계를 갖고 있는 공직자들에게도 떡값이 수수되는 관행이 정착된지 오래다.이런 의미의 떡값은 뇌물이 아니다.직무행위에 대한 대가관계가 인정되지 않을뿐 아니라 불법.
부정한 이익이라고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정이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우리사회에서 그것은 일종의 관례화된 정나누기의 미풍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사교적 의례에 준하는 떡값과 뇌물의 구별기준이다.사교적 의례로서 하는 선물이라도 직무행위와 대가관계가 인정되면 뇌물이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직무행위와 대가관계가 있더라도 관행적으로 승인된 경조부조금.전별금.축하금.계절적인 문안인사 등을 위한 선물정도를 초과하지 않으면 뇌물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직무행위와 뇌물의 대가관계는 형식적으로 판단할 사항이 아니라 실질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사항이다.그렇다면 대가의 정도가 문제다.주관적으로는 떡값으로 건넸더라도 사회적으로 용인될수 있는 거래관행의 정도를 초과한 액수면 뇌물로 봐 야 할 것이다.반면 주관적으로 대가관계를 예상하고 건넸더라도 상식을 벗어나지 않은 관행의 범위안에 머물렀을 때에는 뇌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떡값의 규모도 이전에 비해 커진게 사실이다.백만원 단위가 옛날의 십만원 단위로 통용되는 사회의식과 관행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떡값이 수수되는 생활관계의 차원도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하지만 수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정치인에게 정치인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떡값이라는 논리는 서지 않는다.상식을 벗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의 처벌규정에는 빈틈이 많지만 분명 이 법률의취지는 이 법률이 정한 절차와 규모를 넘는 정치자금을 아무도 기부하거나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정치자금명목의 돈은 이 법률이 정한 범위와 방식에 따라야 하고 그 이외 의 돈은 사회관행과 상식이 정한 룰에 따라야 한다.그렇다면 상식을 벗어난 떡값은 말이 떡값이지 부정한 정치자금 아니면 뇌물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의 일탈행동 때문에 우리들의 일상적인 언어도 훼손되고 오염돼가고 있다.솔직하고 사나이다운 정치인이 음흉하고 음모스러운 얼굴을 한 정치인보다 훨씬 낫다.미풍이라 할 떡값을 뇌물과 혼동시키는 정치인들의 말장난을 그치게 하고 정 상적인 사회생활의 언어관행을 터득하는 기회를 저들에게 줘야 한다.
이 일은 제1차적으로 검찰과 법원의 책무에 속한다.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개념을 씌워 개별적인 직무관련성의입증곤란성을 벗어났던 검찰과 법원은 적어도 떡값과 뇌물을 착각하는 부패한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뇌물개 념을 적용해야할 것이다.법을 살리면 정치.도덕적 책임은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다시 물을 것이다.
金 日 秀 <고려대 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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