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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길지만 희망은 있다 … 위기 넘길 때마다 경제 더 튼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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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29년 vs 2008년

#미국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29년 가을 “주가가 고원의 경지에 이르렀다”며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빚까지 내 주식을 샀다. 한 달도 안 된 10월 29일 다우지수는 11.72%나 폭락했다.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주가는 그후 3년간 10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피셔는 조롱거리가 됐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지난달 뉴욕 타임스에 기고문을 실었다.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이 투자 기회’란 내용이었다. 그는 골드먼 삭스와 GE에 각각 50억 달러와 30억 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주가는 더 떨어졌다. 지금까지 버핏의 점수는 낙제 수준이다.

위기의 본질은 같다. 금융에서 터진 부실이 실물 경제를 삼켰다. 금융회사가 줄줄이 쓰러져 돈줄이 막혔다. 경제에 피가 돌지 않았다. 대공황 땐 철도·석유회사가 무너졌다. 최근엔 씨티은행·GM·포드 등 미국의 간판 기업이 흔들린다.

그러나 같은 점은 여기까지다. 대공황 때는 ‘나만 살고 보자’ 식이었다. 당시 미국은 관세를 50%나 올렸다. 유럽도 경쟁적으로 관세를 올려 맞섰다. 그 결과 3년 만에 세계 무역량은 25%나 줄었다. 당시 정부가 역주행을 했다. 돈줄이 막혔는데 금리를 올렸다. 중앙은행이 돈도 마음대로 못 풀었다. 대책 마련도 한 발 늦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케인스의 이론대로 재정을 대거 풀어 공공사업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대공황이 발발한 지 4년이 지난 33년이었다. 그 결과 10년간이나 깊은 침체의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다르다. 주요 20개국(G20)은 보호무역을 1년간 금지하는 데 합의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유동성을 확대하기 위해 일제히 금리를 내리고, 감세와 재정 확대를 골자로 한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다. 통화 스와프를 통해 서로 ‘비상금’까지 챙겨줄 정도다.

◆1997년 vs 2008년

#97년 11월 21일. 강만수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은 일본 사카키바라 국제금융 차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와프 방식으로 100억 달러를 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였다. 한국은 그날 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2008년 10월 30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00억 달러의 통화 스와프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IMF에 자금 지원을 요청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11년 전의 위기와 현재의 위기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 체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금융위기로 어렵기는 하지만, 붕괴가 생기지 않는 이유다. 97년 말 204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이 지금은 2122억 달러에 달한다. 기업의 부채비율도 425%에서 92%로 줄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97년 외환위기는 아시아 일부 지역의 문제였다. 당시 미국·유럽의 경제는 괜찮았다. 반면 이번 금융위기의 진앙지는 미국이다. 유럽·일본 등 전 세계가 영향을 받고 있다. 이번 위기가 더 오래 이어질 수 있는 이유다. 서강대 김광두 교수는 “침체의 골이 외환위기 때보다 더 깊어질 수 있지만 처방을 잘하면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금융회사에 푼 돈이 기업이나 가계로 흐르면 실물이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위기는 경제 체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라며 “기업과 노조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윤·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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