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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일자리 ‘회생 엔진’으로 철도 선택 … 10년간 4만㎞ 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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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장다웨이(張大衛) 허난(河南)성 부성장. 그는 지난달 11일 건설국 국토국 환경보호국 등의 성(省) 정부 관리 10여 명을 이끌고 급거 상경해 베이징 싼리허(三里河) 주변의 궈훙(國宏)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그의 가방은 철도, 주택 건설, 농가 지원 등 허난성 투자 프로젝트 기획안으로 가득했다. 그뿐만 아니다. 선웨이궈(瀋衛國) 안후이성 발전개혁위 주임, 루즈위안(陸志遠) 하이난(海南)성 관광국 국장 등도 같은 시기 이곳에 머물며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현지 언론은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싼리허 주변 호텔은 빈방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전하고 있다. 지방관리들은 왜 베이징의 싼리허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을까.

◆‘투자 대약진 운동’이 시작됐다=지방관리들이 싼리허로 대거 몰려드는 이유는 거시경제 및 개발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국무원 산하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달 9일 4조 위안(약 800조원)에 달하는 경기부양 대책이 발표된 후 발전개혁위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다. 더 많은 중앙재정을 따내기 위한 지방정부의 로비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안신(安信)증권의 수석연구원 가오산원(高善文)은 “4조 위안의 경기부양 대책 발표는 정부가 ‘이제부터 마음껏 투자하라’는 신호를 지방정부에 내린 것”이라며 “지방정부에 씌워졌던 투자 족쇄가 풀림에 따라 전국적으로 또 한 차례 투자 붐이 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기부양 대책 발표 이후 각급 지방정부들은 앞다퉈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광둥성, 향후 5년간 2조3000억 위안 투자’ ‘랴오닝(遼寧)성, 내년 고정자산투자 1조3000억 위안’ ‘산둥(山東)성, 9000억 위안 투자’…. 중국 언론은 이미 발표된 지방정부의 투자계획액만도 10조 위안이 넘는다고 전한다. ‘투자 대약진 운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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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는 2004년부터 지방정부의 투자 붐에 족쇄를 채워 왔다. 중국 정부의 이번 경기부양 조치는 결국 그 족쇄를 풀어 준 셈이다. 박진형 KOTRA 중국본부장은 “중앙정부의 통제가 허약해지면 지방정부는 투자에 뛰어드는 경향을 보여 왔다”며 “지방정부의 투자 본능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투자가 본격적인 효과를 낼 내년 후반기엔 중국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쑨리젠(孫立堅) 푸단대 교수는 “1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중국은 1998~2004년 동안 연평균 1400억 위안의 재정투자로 경제성장률을 1.5~2%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었다”며 “경제 규모를 감안할 때 4조 위안에 달하는 이번 투자로 내년 성장률 8.6%는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왜 철도인가=우한(武漢) 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중국 3대 철강업체 중 하나인 우한강철. 수요 급감으로 하반기 들어 철강 가격이 40%가량 급락하면서 지난 9월 이후 공장가동률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임원은 임금의 50%, 일반 직원은 25%씩 삭감해야 할 정도로 경영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우한강철 공장에도 최근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말한다. 철도 건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국가발전개혁위는 내년 철도 건설에 1조 위안을 투자할 경우 약 2000만t의 철강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연간 철강 소비량의 약 5%에 달하는 규모다. 여기에 이번 부양책에 포함된 도로·공항·주택 등의 건설사업을 포함하면 향후 2년 동안 1억5000만t의 신규 철강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한다. 위기에 빠진 철강산업을 살리기에 충분한 양이다.

중국이 철도 건설에 역점을 두는 또 다른 이유는 ‘어차피 투자해야 할 프로젝트’라는 데 있다. 중국의 총 철도 길이는 7만7000㎞로 세계 철도의 약 6%를 차지한다. 그러나 철도 운수 수요는 전 세계 운송량의 25%에 달한다. 그만큼 철도 노선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성병훈 KOTRA 우한관장은 “당초 중국은 2020년까지 철도를 12만㎞까지 늘릴 계획이었다”며 “건설사업을 앞당겨 경기를 부양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산업 수요를 충족시킨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10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 정도의 철도를 다시 건설하는 셈이다. 중국 주요 도시를 잇는 고속철도만 서울~부산 고속철의 28배다.

◆문제는 자금 조달이다=우한시 상무국의 가오즈강(高志剛) 대외무역처 처장의 요즘 하루 일과는 회의로 시작해 회의로 끝난다. 투자에 따른 자금 확보 방안을 짜내기 위해서다. 그는 “사업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를 놓고 지방정부와 국유기업·은행 등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며 “경제가 침체기로 접어들고 있는 터라 자금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투자 프로젝트 발굴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정부 승인이 나지 않았거나 경제성이 없어 보류됐던 건설 프로젝트 기획안을 적당히 고쳐 다시 상부에 보고하면 되니 말이다.

4조 위안 중 중앙정부가 부담하는 금액은 약 1조 위안. 나머지 3조 위안은 지방정부와 민간 몫이다. 가오산원 연구원은 “지방정부는 3조 위안 중 1조 위안을 지방재정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2조 위안은 은행과 국유기업에 손을 벌려야 할 처지”라며 “아무리 국유기업이라고 해도 수익성 낮은 사업에 뛰어들 업체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 참여 업체에 특혜를 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중국의 일부 전문가는 4조 위안에 달하는 경기부양 대책이 또 다른 부정부패의 시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10년 전 경기부양 때 17명에 달하는 지방정부의 핵심 도로 관련 공무원이 철창 신세를 지기도 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중국이 치러야 할 대가였다. 

우한·상하이=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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