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고통이 느껴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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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8강전>
○·야마시타 9단(일본) ●·쿵 제 7단(중국)

제5보(54~69)=54에 대한 박영훈 9단과의 대화다.

이 수는 필요한가. “수는 안 난다. 당장 급할 건 없다.” 그렇다면 불리한 백이 왜 이곳을 지키는가. “자체로 두텁다. 또 흑A로 붙이는 수를 방비하고 있고 무엇보다 대마에 대한 공격을 보려면 이 수가 필요하다.” 결국은 필요한 수라는 뜻인가. 잠시의 침묵, 그리고 나오는 대답. “어렵네요. 한마디로 괴로움이 담긴 수죠. 야마시타 9단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B가 크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중앙 흑 대마를 압박하면서 한 수 가일수를 기대하고 54를 둔다. 유리하니까 사고치지 말고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쿵제의 55, 57이 적시타. 이것으로 C의 뒷맛도 사라졌고 대마의 안형도 풍부해졌다. 그리고 61. 이 기막힌 요소를 차지하며 흑은 훌쩍 앞서간다. 바둑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때론 압박과 위협이 통하지만 지금의 54처럼 허공을 그으면 그걸로 대세는 끝장나 버린다.

‘참고도1’은 교과서적이지만 비세의 백이 채택할 수 없는 그림. 62는 야마시타가 처음 던진 강수였으나 때늦은 감이 짙다. 65로 시원하게 봉쇄한 뒤 69로 살짝 후퇴해 버리니 집 없는 백은 갈 길을 몰라 막막해진다. 69로 ‘참고도2’처럼 공격을 계속하는 것은 만용. 백4까지 승부를 만들어 주고 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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