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못 입는 남자가 무시당하는 시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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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15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친구들이 선생님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평가 기준은 ‘똑똑함’이었다. “걔 진짜 똑똑하잖아.” 이것이 고등학생이 교사에게 보내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에 대한 관심사는 체벌 방식과 강도뿐인 ‘날라리’들도 교사를 재기 시작했다. 역시 평가 기준은 ‘똑똑함’이었다. 나는 그런 말을 삼갔다. 그렇게 선생님을 평가하는 건 건방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의 변화를 따르지 않은 셈이다.

시간을 20년 전으로 되돌린 건 요즘 다시 사람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과 그로 인한 평판이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은 ‘옷 입기’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옷이 날개’라는 오랜 격언이 그 증거다. 하지만 평가의 뉘앙스는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부티 나게’ 입으면 남들이 부러워했다. 하지만 요즘은 명품 브랜드 로고가 크게 박힌 옷을 입고 다니면 되레 싸늘한 눈길만 산다. 이런 힐난이다. “요즘 그거 못 입고 다니는 사람 있어? 보란 듯 드러내고 다니게.”

‘부티’와 달리 ‘감각’은 예나 지금이나 옷 입기에 대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달라진 점은 이제 감각 있는 사람이 칭찬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감각 없는 사람이 무시당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풍조는 여자는 물론 남자 사회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옷 잘 입는 성인 남자’는 외국에서 MBA 따온 금융맨이 있는 서울 여의도나 광화문 파이낸스센터에 가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일반 기업 사옥에서도 꽤 의식하고 차려입었음이 분명한 남자들이 눈에 띈다. 이제 옷 잘 입는 남자가 ‘기생오라비’ 취급받던 시대를 지나 ‘옷 못 입는 남자는 자기 관리 못 하는 남자’로 여겨지는 시대로 진입하는 중이라고 말하면 너무 성급한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이미 1990년대부터 주요 대기업은 ‘정장 제대로 입기’ 같은 사내 강의를 꾸준히 열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근대 일본이 외국 주재 외교관에게 서양 복식을 가르친 것처럼). 불과 5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와인에 대한 무지가 스트레스를 줄지 누가 알았나? 분명 남자의 패션 감각과 지식도 와인처럼 ‘선택’에서 ‘필수’로 바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작은 사회의 변화다. 사회가 바뀌면 거기 적응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유례없이 늘어난 외국인 부인과 혼혈 자녀를 둘러싼 변화를 학습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 결정해야 한다. ‘옷 못 입으면 매력 없는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회의 시민권을 취득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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