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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기자의 공개 못한 취재수첩] “한진이 미군 수송감들 살려준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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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청룡부대가 월남 파병 행사를 갖고 있다.

1965년에 조중훈 회장과 함께 조중건 상무(전 부회장)가 펜타곤에서 들은 정보는 베트콩을 싹쓸이하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했다. 월남을 제대로 치겠다는 얘기였다. 그것은 미군이 승리할 때까지 탄약을 비롯해 전쟁물자를 무한정 지원한다는 뜻이니 한진에는 넉넉한 일감이 있다는 암시였다.

박정희의 도박, 월남파병 ⑩ 한국 온 보급물자 도난 막아줘 … 미군 친구가 베트남 병참 부사령관 소개

사실이 그랬다. 파월 한국군이 68년 12월 28일 발표한 종합 전적만 해도 2년 동안 사살이 2만1000명이 넘는다고 했을 정도니까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군이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이 함락되는 것까지 지켜봐야 했을 테니 펜타곤의 전략물자 투입 계획은 사실적이었고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정보를 파악하고 정부 보증까지 받아가며 새로운 장비를 대거 구입해 월남 진출을 계획해 왔던 한진인데, 출발 직전에 믿고 있었던 미군 인맥이 힘을 쓸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다는 소식을 듣게 됐으니 조 상무로서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치열한 전장에 뛰어들어 일감을 확보하는 것은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고 한진의 사운이 걸린 문제였다.

그런데 미국에서부터 오랜 친구였고 여차하면 ‘빽줄’로 생각했던 ‘하인카스’라는 부사령관이 월남에서는 병참담당 부사령관이 아닌 전투담당 부사령관이라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조 상무는 맥이 쭉 빠지더라고 했다. 말하자면 수송을 담당하는 병참담당 부사령관이 하나 더 있다는 얘기였다.

“정신이 번쩍 나더라구요. 내가 급하면 하인카스 장군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헛짚었다 이거죠. 더구나 마이클 장군 이 친구도 빈소리를 하는 친구가 아니에요. 정확히 판단해주는 거지요. 자기가 모시고 있던 병참담당 부사령관을 워싱턴에서 월남까지 에스코트해서 사이공에 모셔놓고 일부러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친구라고 나를 찾아왔는데, 내가 월남 간다고 하는 마당에 허튼소리나 할 리가 있겠어요? 솔직히 눈앞이 깜깜해져요. 친구니까 좋은 데 가서 한잔하자고 그러는데 그 소리도 싱겁게만 들려요. 구정에 문 다 닫았지 좋은 곳이 어딨느냐고, 너도 헛짚었다고 꽥 소리치며 웃었지만 나는 속이 타는 거지요.”

-하필이면 출발을 하루 앞두고 그런 소식을 들었으니 참 난감하셨겠습니다.
“난감한 정도가 아니라 깜깜했지. 한진으로서는 첫 해외 진출이고, 더구나 전쟁 중인 나라에 대규모 수송 인력과 수송 장비를 투입하겠다는 상황 아닙니까. 우리로서는 사운을 걸고 많은 준비를 해왔고. 그런데 갑자기 기댈 곳이 없어졌다고 생각해봐요. 미칠 노릇 아니겠어요. 근데 참 희한해. 내가 사업은 운이 착착 맞아 들어가야 된다는 얘기를 했지만 때마침 그 친구가 서울에 오지 않았으면 어떡할 뻔했어요? 하인카스 장군만 믿고 덜렁덜렁 갔을 거 아니오. 물론 급하면 하인카스 장군한테 병참담당을 소개받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사업은 그게 아니거든.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수송이니까 무조건 병참담당 부사령관을 꽉 잡아야 되고 유대를 계속 해나가야 한단 말이에요. 그러자면 병참담당 부사령관이 진짜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야 돼요. 근데 마이클이 왔잖아요. 그 친구가 병참담당 부사령관의 심복처럼 가깝다고 했단 말이죠. 이게 운이에요. 자기가 대령 때 모셨던 장군이 ‘앵글라’라는 바로 그 병참담당 부사령관이라는데 그 친구가 내 옆에 앉아 있단 말이야. 그게 절묘하지 않아요?”

-워싱턴에서 사이공까지 직접 동행해서 모셨다면 보통 사이가 아니었겠군요.
“남녀 사이도 그렇게까지 하기가 어려운 거 아닙니까. 워싱턴에서 사이공이 어딘데. 그 얘기를 듣는데 머리를 탁 치는 거지, 하하하. 당장 소개장 하나 쓰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술집에 타이프가 있나? 펜도 없어요. 그래가지고 옛날 군인들이 보고서 올릴 때 쓰던 누런 종이가 있어요. 파란색 선이 죽죽 그어져 있고. 거기에 장군들이 겨드랑이 밑에 꽂고 다니는 노란 연필이 있는데 그걸로 좌우간 알아보지도 못하게 소개장을 꾹꾹 눌러 썼어요. 서로 막 웃고 말이지. 그걸 받아 넣고 다시 부탁을 했어요. 워싱턴에 돌아가면 앵글라 부사령관한테 나를 특별히 소개하는 텔렉스를 쳐 줄 수 있겠느냐고. 이중삼중으로 안전장치를 해놓는 거지요. 그랬더니 기꺼이 ‘슈어’. 그게 나중에 진짜 월남에서 먹히는 겁니다. 하하하.”

조 상무는 평소에 인적자원의 대부분을 형인 조 회장이 닦아놓은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월남에서는 군 경력이 많았던 조 상무의 인맥이 큰 도움을 주었다고 실토했다.

-결과적으로 출발 전에 이미 병참담당 부사령관을 소개 받은 셈이니 절반은 성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습니다.

조중훈 “걱정 마, 내가 실어 줄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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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당시 조중건 부회장, 김장환 목사,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 스티븐 벡텔 주니어 벡텔그룹 명예회장(오른쪽부터)이 포즈를 취했다. 조중건 고문의 폭넓은 인맥을 보여준다.
“마음이 좀 놓였던 건 사실이고, 인맥을 자꾸 얘기하면 거북스럽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 월남전에 뛰어들 때는 그게 아주 중요한 거예요. 수송 얘기를 하기 전에 내가 장황하게 여러 가지 배경 설명을 하는 건 어떻게 돼서 미국 용역회사들도 있는데 다 물리치고 수송사업을 할 수 있었는지, 그걸 알아야 이해가 빠를 것 같아서입니다. 원래 운수업하고 산판업(山坂業)은 투기라고 했을 정도로 위험도 따랐지만 반은 운으로 한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그랬는지 그 당시 우리나라의 사회상도 한진 편이 돼 줬다구요. 이게 무슨 얘기냐, 그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엉망이었어요? 그게 오히려 한진한테는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는 거지요. 얘기한 대로 나는 59년 11월에 귀국했지만 그 사이에 조중훈 회장이 57년부터 미군 군수물자 수송사업을 독점하고 있었다고 했잖아요? 근데 그때 집으로 초대하고 선물 주고 그런 것도 미군들하고 친목을 다지고 유대를 깊게 가지는 계기가 됐겠지만 그보다 미군 수송감들을 우리가 다 살려준 셈이라구요.”

-의외의 내용이군요. 한진이 미군 수송감을 살렸다니 금시초문입니다.
“이런 얘기 아마 첨 들을 겁니다. 6·25 이후부터 60년대, 70년대까지도 그랬지만 미군의 모든 물자, 기름과 군수품이 전부 인천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면 미군 수송부에서 부평으로 수송하고 부평 보급창에서 문산, 동두천, 의정부, 그리고 서울에 보급을 했다구요. 그런데 그때 한국 사회가 엉망 아닙니까. 미군 트럭들이 부두에서 부평까지 보급품을 나르는데 중간에 반은 다 없어져. 한참 가다 보면 언제 귀신이 타고 있었는지 트럭 뒤에 타가지고 다 던지는 거요. 하하하. 미군부대에 도착해서 보면 반 남으면 잘 남은 거고 3분의 1이나 되나? 그러니까 미군들이 펄펄 뛰는 거지요. 보급창에 쌓아둔 기름도 어느 날 보면 ‘도라무통’(드럼통)이 저절로 구르네? 사람은 안 보이는데. 그걸 훔치느라고 땅굴을 뚫고 지하수 관로를 타고, 그야말로 별짓을 다 하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그런 시절입니다. 아마 그때 땅굴 팠던 놈들이 전부 북한으로 갔을 거야. 그러니까 초소가 있는데도 휴전선에서 땅굴을 귀신같이 팠지? 하하하.”

-분실되는 것을 한진이 막았다는 겁니까?
“막은 정도가 아니라 살려줬다니까요? 무슨 얘기냐, 전부 도둑을 맞고 그럴 때, 우리 조중훈 회장이 미군 보급창 대장을 만나 아이디어를 냈던 겁니다. 그게 한진이 수송사업을 하게 된 계기고, 미군 수송감들을 살린 거예요.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대장, 걱정하지 마. 내가 실어줄 게. 내가 수송 전문업자야. 물건 잃어버려? 그건 내가 변상해주겠어. 당신은 수송비만 내.’ 몇 t을 몇 마일 나르는 데 얼마다 하는 기준이 있을 것 아니겠어요. 그걸 내라는 거지. 그렇게 해도 도둑맞는 물자보다 수송비가 더 싸고, 물건을 잃어버리면 한진에서 돈으로 해주든가 물건으로 변상을 해준다는데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 보급창 대장이 생각할 땐 기가 막힌 제안이지. 그렇지만 반신반의해요.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물건으로 변상해?’ ‘양키시장에 가면 있잖우. 도둑맞은 건데 그게 양키시장으로 다시 나오지 어디로 가겠수?’ 하하하. 보급창 대장이 그런 조건이라면 좋다 이거죠. 도둑을 자꾸 당해서 죽을 지경이고 만날 얻어터지고 시말서 쓰고 모가지가 달아나게 생겼는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이거야. 그게 결국 수송감들을 살린 것이고, 한진이 미군 물자를 맡은 계기고, 월남에서 그때 인물들을 다 만났으니 미국 용역회사들이 있는데도 전부 물리치고 우리가 수송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한진 최대 자산은 세계적 인맥

기업의 성장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정부의 지원책을 제외해 놓고 본다면 한진은 기술력이나 자금력으로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해 거대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인맥이 밑거름이었고, 거기에 창업주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기회 포착이 기술력과 자금력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는 얘기다. 기업은 곧 사람이고 인맥은 곧 인연인데, 창업주부터 인맥을 중시했기 때문이겠지만 월남 진출에서 성공을 거둔 것도 예외일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리는 부분이다.

조중건 고문은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한진그룹에서 드러내지 않고 있는 자산이 있다면 그것은 누구도, 어느 기업도 따를 수 없는 세계적인 인맥이라면서, 한진이 대한항공도 인수하고 오늘날의 한진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겉으로는 분명히 월남 전쟁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시작하는 셈이지만 내막적으로는 사람하고의 인연이 한진을 성장시킨 힘이었다는 것이다.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려니까 얘긴데, 내가 버클리 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편지도 써주고 장학금 알선도 해주고 그랬던 사람이 있어요. 우리가 월남에 진출할 때도 펜타곤에서 결정적인 정보와 도움을 준 사람인데 ‘레이칸(Laikan)’이라는 중령이 있습니다. 그 사람하고 오랜 인연이 따지고 보면 사실상 그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를 키운 겁니다. 내가 53년 당시 철원 5사단 포병부대에서 송찬호 장군하고 복무할 때 그 부대 고문관이면서 미 펜타곤의 연락장교로 와 있던 사람이 바로 레이칸 중령이에요. 닉슨 부통령도 직접 편지를 보내올 정도로 레이칸과 친해요. 그 사람하고 내가 전방에서 막사를 같이 썼어요.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레이칸도 내가 필요했지요. 좁은 천막 속에서 세 끼 식사 같이 하고 친형제처럼 생활했는데, 많은 사연이 있지만 그때의 인연이 결국에는 월남까지 숱한 도움을 주고 그랬거든? 그러니 한 사람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 겁니까.”

아마도 월남에서 레이칸과도 뭔가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마침내 조 상무는 월남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보니까 정말 아는 사람투성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첫날부터 현장을 누볐다고 했다. 상황파악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미군이 한진을 위해 문을 열어놓은 것 같았다. 왜냐하면 당시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미국에서도 천재라고 했을 정도인데 월남에 부두 시설이 전혀 없는 상태를 간과했다라는 것이다.

“병력은 비행기로 투입될 수도 있고 걸어서라도 이동하면 되지만 보급 물자는 선박이든 비행기든 수송을 하면 즉각 하역이 돼야 전쟁을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하역 시설이 전무하다고 할 정도로 엉망이더라구요. 그걸 고려하지 않고 막 쏟아 부었으니 말이야. 그러니 그게 전부 돈인데, 이 양반(맥나마라)이 한진을 위해서 모른 척했나? 그런 생각까지 들더라구, 하하하. 그래가지고 나로서는 좌우간 사람이 자본이고 막 밀어댈 작정이었으니까 부사령관부터 찾아 나설 판이에요. 솔직히 정부가 월남 참전을 결정한 건 우방을 돕고 반공을 하기 위해서지만 사업하는 우리는 전쟁하는 나라에서 돈 좀 벌어 경제부흥을 하자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어떡하든 일감을 콱 물어서 주머니에 넣는 게 장땡이란 말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없어요.
친구가 써준 소개장은 신주 모시듯이 넣어놓고 그때 주월 대사가 신상철씨인데, 그분도 공군 소장으로 예편하셨는데 공군사관학교 교장을 지내셨고 대단한 분 아닙니까. 한 사람만 거치면 다 알잖아요. 인사를 드려놓고, 우선 한국대사관 바로 뒤에 있는 앰배서더 호텔에 숙소를 정했어요.”

그러나 조 상무의 친화력과 활약이 아무리 뛰어나고 인맥이 두터워도 미군만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수송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

객원기자·작가·leeho52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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