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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매직 믿어, 반전의 시기 조만간 온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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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책 참모인 곽승준 고려대 교수(경제학)이 입을 열었다. 그는 현 청와대 참모와 각료들의 소극적인 자세와 지지부진한 공기업 개혁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지난 5월 민노총과 정권이 전면전을 벌이자고 주장했던 사연도 털어놓았다. 이하는 중앙 SUNDAY 기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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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당시 이명박(MB) 대선 후보 선대위 정책기획팀장이던 곽승준(48) 고려대 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공기업 민영화를 촉구하는 본지 기사를 봤다는 그는 공기업 개혁에 대한 MB 공약의 정당성을 확인받고 싶어했다. 석 달 뒤 국민은 공공부문 개혁과 7% 경제성장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MB노믹스’를 선택했다. 하지만 MB노믹스를 주도했던 ‘왕의 남자’ 곽 교수는 ‘좌(左)우익, 우(右)승준’이란 별칭이 무색하게 지난 6월 촛불에 묻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래기획위원장이나 청와대 수석 복귀설이 돌고 있는 곽 교수의 연구실을 25일 찾아갔다. 그는 조심스레 다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미래기획위원장에 임명되는 것 맞나.
“글쎄, 인사는 대통령께서 하시는 거니까 알 수 없다. 나로선 급할 게 없다. 학기 끝나고 천천히 보려고 한다. 마침 내년이 안식년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미래기획이니 MB노믹스니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촛불시위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MB노믹스가 동력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핵심 세력은 와해되고 반대 세력만 형성된 느낌이다. 하지만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왜 뽑아 줬나. 이명박다운 것, 지난 정권과 차별화되는 것, 그런 것 때문에 뽑아 준 것 아닌가. 그게 바로 MB노믹스인데 자꾸 변형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는 이번 학기 학부생을 대상으로 도시부동산 금융론을 강의하고 있었다. 서브 프라임 문제에 대해 물었다.

-금융위기 국면에서 우리 정부의 대처는 적절했나.
“인수위 때 보니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이 문제에 대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한 거 같더라. 전 정권은 이 문제를 주의 깊게 관찰해 왔는데 정작 우리는 대선 승리의 자만에 너무 빠져 있었다.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대처한 측면이 있다.”

-강만수 경제팀의 실책이란 얘기로 들린다.
“경제 주체들에 대한 정부의 리더십이 크게 훼손된 측면이 있다. 환율 정책도 혼선이 있었고, 성장이냐 안정이냐 하면서 왔다 갔다 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 직원 한 명이 기발한 파생상품 하나 만들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지고…, 정부는 그게 뭔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얘기는 그의 소신인 공공부문 개혁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어려울수록 구조조정도 해야 하고 어려울 때 개혁도 해야 한다. 지금 주공-토공이나 신보-기보 통합도 거의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신보는 중소기업이 어렵다는 말이 나오니까 오히려 조직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다. 공공부문 개혁에 조속히 나서야 한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면 매각 수입만 60조∼70조원에 달한다. 그 돈으로 재정지출을 늘리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위기 국면이니까 공기업 개혁 시기를 좀 조정할 수도 있지 아닐까.
“아니다. 단기적 대응책, 그러니까 금리·환율·재정 정책을 펴는 것과 중장기적 개혁 과제를 실행하는 것은 전혀 상충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투 트랙으로 추진해야 한다. 몇 년 뒤 세계 경제가 좋아져 한국 경제가 살아난다고 이명박 정권의 지지율이 올라갈 줄 아나. 아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 때를 봐도 알 수 있다. 공기업 개혁 같은 확실한 실천과제를 내걸고 성공시켜야 국민이 평가해 준다. 2∼3년 뒤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길은 공공부문 개혁과 규제완화밖에 없다. 잠재성장률을 높여 놓아야 세계 경제 회복기에 한국 경제도 과실을 따먹을 수 있다.”

그의 말은 거침없었다. “국·영·수 제쳐놓고 예체능만 공부해선 고득점 못 받는다”거나 “땅에 떨어진 정권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공기업 민영화는 서둘러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에게 공기업 개혁은 MB 정부의 ‘국·영·수’인 듯했다.

-그렇게 강하게 공기업 개혁 얘기를 하다 역풍 맞고 물러난 것 아닌가.
“그것만 강하게 얘기한 줄 아나(웃음). 민노총하고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쇠고기는 우리가 생각 못 했던 부분이었고 결론적으로 우리가 졌다. 하지만 민노총 문제는 다르다. 패잔병을 다 끌어모아 우리가 유리한 지형에서 귀족 노조, 정치 노조와 한번 붙자는 게 내 주장이었고, 그 고리가 공공부문 개혁이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에서도 민노총 시위가 촛불과 합쳐진다며 반대가 많았다. 그 싸움을 올해 했다면 3년 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높아지는 데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아쉽다.”
지금의 청와대 참모와 각료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은 듯했지만 그는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청와대 비서진에 아쉬운 건 없나.
“왜 없겠나. 시장의 심각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대통령을 앞에 세우고 참모들은 뒤에 숨고 있다. 참모들은 소모품이 돼야 한다. 앞에서 열심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해야 하는데 지금은 대통령 목소리만 나온다. 대통령은 가급적 실수 안 하도록 해야 하고 대통령 말 한마디에 시장이 진동하도록 해야 하는데 다들 뒤에 숨어 있다. 왕이 앞에서 화살을 맞으면 전쟁에서 지는 법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그랬나.
“금리 내리라는 얘기를 대통령이 여섯 번 했다고 하더라. 근데 금리가 어땠나. 참모들이 미리 은행장 만나 설득하고 대통령이 말하면 쫙 움직이게 해야지…. 대통령 발언이 신뢰를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수도권 규제완화도 말이 많다.
“그거 전 국민의 70%가 반대하는 거다. 70%가 찬성하는 공기업 개혁도 못 하고 있으면서 갑자기 수도권 규제완화 하겠다고 나오면 당연히 반발이 있다. 그걸 하려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초광역경제권 구상과 함께해야 한다. 부산∼여수∼목포 해안선을 잇는 인구 1000만 명의 초대형 경제권을 만드는 구상이다. 그런데 지금 이 계획은 쏙 들어갔다. 행정구역 개편도 무슨 실익이 있는지 국민은 잘 모르고 있다. 야당은 선거구 개편으로 이해하고 있고.”

혈기방장한 40대 열혈 교수의 목소리는 좀처럼 낮아지지 않았다. 그는 대선 이후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이상득-정두언-이재오-박영준 등 이른바 창업공신들이 단합 모드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물러난 1기 청와대 수석끼리 사랑방 모임이 있다고 들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만난다. 내가 간사다. 1기 청와대 수석과 물러난 장·차관들이다. 이종찬 전 민정수석 사무실에 모여 우리가 MB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격정적인 그의 토로를 2시간 넘게 듣다 보니 문득 그의 실체가 궁금해졌다.

-당신은 정치를 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다. 난 정책 쪽에서 MB 정부의 성공에 기여하고 싶을 뿐이다. 그게 내 인생의 성공이다. 5년 뒤 나는 성공한 정부에 기여했다는 소리만 들으면 만족한다.”

-이 정권이 실패하면 당신의 인생도 실패한 것인가.
“어린 시절부터 나는 MB를 봐 왔다. ‘이명박 매직’이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그가 툭툭 털고 일어나 탁탁탁 하면서 굉장히 빠른 움직임을 보여 주며 결단을 내리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면 갑자기 상황이 확 바뀔 거고. 그런 반전의 시기가 조만간 온다. 두고 보라.”

윤창희 기자 [thepl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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