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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길.권노갑의원은 金 그림자-정치자금 관리 執事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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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4면

5일 터져나온 홍인길(洪仁吉).권노갑(權魯岬)의원의 한보거액수수설이 메가톤급 폭발력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수수액 규모가아니다.두사람이 말그대로 각각 YS(金泳三대통령)와 DJ(金大中국민회의총재)의 분신(分身)이기 때문이다. 두사람은 양김에 대해 속옷.습관까지 속속들이 꿰고 있다.오랜세월 양김의 집사장(執事長)으로서 안살림을 맡았던 두사람은 특히 정치자금관리에 깊숙이 손을 담갔다.그래서 이들에 대한 거대한 의혹을 한보불길이 양김진영의 핵심으로 바로 옮겨 붙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다. 더욱이 洪의원은 YS의 대통령취임이래 지난해 총선출마전까지 약3년간 청와대의 금고지기라 할 수 있는 총무수석을 지냈다.경호실을 거치지 않고 집무실과 관저를 무상출입할 수 있는 충복이었다.그는 그 기간중 대통령의 일상사를 보살피고 친인척을 관리하는등 청와대살림을 꾸렸다. 밖으로는 야당시절 고락을 같이했던 수많은 대.소 인맥을 챙기는 일을 도맡았다.YS가.깨끗한 정치'를 누누이 강조했기 때문에 그의.일과 역할'은 더욱 늘 수밖에 없었다.당시 총무수석실은 갖가지 민원인들로 붐볐으며 그는 민주계 사람들 의 길흉사등에 반드시 관심을 표하곤 했다. 그는 지난해 YS지역구였던 부산 서구를 물려받았는데 구덕체육관에서 열린 지구당대회가 너무 요란해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洪의원은 96년 여야를 통틀어 후원금 모금액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187㎝의 거구인 洪의원은 거제출신으로 YS의 먼 인척.경남공고를 졸업하고 동아대 법대를 중퇴했다.부산에서 수산업을 하다70년대 중반 상도동에 합류했다.80년대 민추협 시절엔 YS 비서실차장으로 당시 김덕룡(金德龍)비서실장.이원 종(李源宗)공보비서와 같은 차를 타고 출퇴근한 원조가신(元祖家臣)이다. DJ의 목포 북교(北橋)초등.목포상고 후배인 權의원은 목포여고 영어교사를 하다 50년대말부터 40여년간 측근으로 활동해온DJ 가신그룹의 장형(長兄).그는 72년 유신과 80년의 5.17후 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등.동교동 신고 (辛苦)' 그자체였다.그랬던 만큼 DJ의 신임은 깊었다. 현재 당직은 경북도지부장에 불과하지만 동교동의 인맥.공천.자금에 깊숙이 관여하는 명실상부한 실세.동교동 돈사정은 DJ와 그의 장남 김홍일(金弘一)의원,그리고 權의원정도가 제대로 알 것이라는 지적이 과언이 아니다.91년 수서사건때도 그는 한보 정태수(鄭泰守)총회장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이원배(李元湃)전의원으로부터 돈을 전달받아 이를 다시 DJ에게 건네줘 당비로 쓰도록 하는 중간역할을 맡을 정도였다. 그가 자금맥을 관리하는 방법은 첩보원수준.웬만한 전화번호나 연락내용은 절대 메모로 남기지 않고 머릿속에 집어넣어 외우는 번호가 1백여개.기업인들과 시간약속을 할때도 전화는 사용하지 않고 꼭 중간에 사람을 넣어 연락한다는 것.6.2 7지방선거때조순(趙淳)서울시장후보의 운동비용이나 국민회의 창당과 당사 임대등 당내에 큰 돈이 필요하면 DJ와 權의원,이종찬(李鍾贊).정대철(鄭大哲)부총재등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쓰는게 관례일 만큼개인적 자금력도 만만치 않았다. 〈 김진.김현종 기자〉 한보사태는 김영삼대통령과 김대중국민회의 총재의 최측근 인사들까지 끌어들이면서 정치권 핵심으로 불길이 옮겨붙고 있다.사진은 홍인길의원이 93년2월 정권출범 당시청와대 총무수석 임명장을 받는 장면과 권노갑의원이 지난해말 안동을 지구당 위원장 임명장을 받는 장면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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