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부하들 목숨 구한 '느림보의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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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느림의 발견 1,2
스텐 나돌니 지음, 장혜경 옮김
들녘, 각252쪽·320쪽, 각 1만원

존 프랭클린은 느린 아이였다. 그의 웃는 낯에 누군가가 주먹을 날려도 웃음을 거두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느림은 모자람으로 통했다. 그러나 느린 본성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까지 인식하게 했다. 조금 늦기는 하지만 남들보다 정확히 계산했고, 올바르게 판단했다. 남의 말을 경청할 줄도 알았다.

지루하게 펼쳐지는 바다에서 버티는 일은 적성에 딱 맞았다. 낯선 땅에서 만난 원주민들의 뜻을 속단하는 ‘빠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자세히 관찰한 끝에 제대로 소통한다. 선장인 그를 ‘캡틴 핸디캡’이라 비웃던 부하들도 결국 그들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해낸 존의 느린 리더십을 존중하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진득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존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준다.

“완만한 작업이 더 중요하다. 정상적인, 빠른 결정은 모두 1등 항해사의 소임이다.”

실존 인물이기도 한 존 프랭클린(1786~1847년)은 영국 해군소장이자 탐험가였다. 북서항로를 찾기 위해 두 번이나 북극탐사에 나섰다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가 남긴 치밀한 탐험 기록과 사료에서 독일 작가 스텐 나돌리는 ‘느림’이란 속성을 발견했다. 이 소설을 쓰기까지 40년이 걸렸다는 작가 자신의 ‘느림’이 투영된 것이기도 하다. 나날이 가속도만 붙어가는 현대사회에서 느림은 ‘장애’로 통할 지경이다. 그러나 ‘꿈의 속도’라는 KTX에서 창 밖을 내다보려면 어지럼증에 눈이 감긴다. 시간을 얻은 대가로 풍경·낭만·사색·관찰 따위를 잃은 셈이다. 작가가 묻는 듯하다. 1분 1초의 지체도 견뎌내지 못하는 ‘빠름’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장애이자 느림에 대한 폭력 아니겠냐고.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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