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과 거리 먼 영화진흥공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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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낙하산 인사'로 물의를 빚은 탤런트 박규채씨가 새 사장에 취임한 영화진흥공사(영진공)는 그동안 영화인들로부터.있기는 있으나…기관'으로 거의 외면당해와 차제에 영진공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박씨의.낙하산'인사 에 대해 영화계가 흥분하는 것도 지금까지 누적된 불만에.해도 너무 한다'는 반발심이 보태졌기 때문이다. 영진공이 설립된 것은 유신시대인 73년.말 그대로 한국영화의.진흥'을 위한 기관으로 운영한다는 것이었다.한국영화의 제작을지원하고 국제영화제등 해외진출을 위한 홍보활동등이 주요 업무인영화전문기관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화인들은“공사가 설립된지 20여년이 지났지만 한국영화가 진흥된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그리고 이는 그동안 정부의 사장인선에서 보듯 전문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인사들을.정실'에 의해 임명한 경우가 많은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초창기에는 퇴역 군장성들에 대한 배려로 인사가 이루어졌고,80년대에는 주로 문화체육부 관리 출신들이 공사를 이끌어왔다.95년 영화평론가 출신인 호현찬씨가 취임했으나 1년3개월만에 물러났고,김상식 전 사장도 7개월 만에 박씨에게 자리를 내주는등 유난히 잦은 교체가 이뤄졌다.영진공이 운영해온 한국영화의 지원방식도 그동안 일관성.객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차례 영화인들의 반발을 사왔다.시나리오를 사전심의해 1억원의 제작비를 주는 사전제작지원제도도 92년 젊은 영화인들이 선정경위에 이의를 제기하는등 반발해 유명무실해졌고,지금은 담보대출형식으로바뀐 상태.이자는 싸지만 은행의 지급보증을 받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대출이 힘든 형편이다. 영진공은 또 지난해 대종상 선정과정에서 말썽을 빚은.애니깽'의 국고지원을 알선해 비난을 샀고,지난달에는 흥행작인.투캅스 2'.고스트 맘마'를 지원금 5천만원의.96좋은 영화'선정작에포함시켜 물의를 빚었다..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세 친구'등 작품은 좋지만 흥행은 부진했던 영화를 지원한다는 원래 취지에서 크게 어긋나“돈 번 영화에.푼돈'을 보태줬다”는 반발을 샀다. 영화인들에 대한 영진공의 주요 서비스중 하나는 현상실.녹음실등 기술적인 장비지원이었으나 그것도 요즘 민간시설들보다 가격이 싸지 않고,오히려 민간시설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비판마저 사고 있는 실정이다.한국영화의 국제시장 진출 업무 또한 독립된 국제부나 수출전담기구가 없는 상태여서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인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는.영진공 무용론'은 그런 기관 자체가 필요없다는게 아니라 현재의 방식으로 운영돼선 안된다는 것.외국의 경우에도 이런 기관들이 있지만 대부분 민간주도로 전문성을 갖고 일한다는 것이다. 영화연구소의 김혜준씨는“기본적으로 영진공이 문예진흥기금이나 문체부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기술사업은 민영화하고 지원기능도 진흥위원회 방식으로 탈바꿈시켜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영진공의 한 관계자는 재원확보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국고와 문예진흥기금에만 의존해선 계속 정부에 귀속될 수밖에 없어 고유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우리나라의 영상산업정책이 방송 따로,비디오 따로,영화 따로 식이어서 부처간 이기 주의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결국 영진공의 문제는 영화정책부재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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