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미혼모 역할 … 악바리 소리 들으며 찍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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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30대 중반의 가수 출신 라디오DJ(차태현)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20대 초반의 딸(박보영)이, 그것도 6살짜리 아들(왕석현)을 둔 미혼모로 나타난다? 줄거리만 듣고 억지스런 코미디라고 여겼다면 오해다. 다음주 개봉하는 ‘과속스캔들’(감독 강형철)은 마춤한 캐릭터와 깔끔한 연출이 어우러진 수작이다.

특히 22세의 미혼모 ‘황정남’을 연기한 배우 박보영(18·사진)은 올 충무로의 수확으로 꼽을만한 신예다. 스크린 데뷔 첫해인 올해 무려 세 편의 영화를 선보였다. 앞서 ‘울학교 이티’와 이번주 개봉하는 ‘초감각커플’에서 각각 다부진 여고생으로 제 몫을 다한데 이어, 제 나이를 웃도는 이번의 배역으로도 풋풋하고 탄탄한 연기력을 발한다. 주연급 여배우의 등용문이 멜러일색인 관행을 깨는 점에서도 주목할만한 배우다.

이 배우의 남다른 자산이라면, 자연이 어우러진 소도시 충북 증평에서 보낸 성장과정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아무렇게나 길을 건너도 자동차가 알아서 서주는 동네”라고 소개하는 말투에 생기가 넘친다. 문학교사가 꿈이었던 소녀는 중학교 동아리 친구들끼리 찍은 단편 덕분에 배우가 됐다. 청소년영화제에 출품된 걸 보고 기획사에서 연습생을 제안했고, “경험 삼아 한번 해보라”는 부모의 격려를 받았다. 이후 주말마다 서울나들이 삼아 연기공부를 시작했다. 첫 작품은 고교 2학년 때 출연한 EBS 청소년드라마 ‘비밀의 교정’. 장면연결이나 카메라워크를 전혀 몰라 “재미있는 것 반 정신없는 것 반”이었단다. 그렇게 시작한 연기가 지난해 SBS 사극 ‘왕과 나’로 이어졌고 연말 연기대상 아역상까지 거머쥐었다.

지금도 이 배우는 ‘재미’를 연기의 원동력을 꼽는다. “아직 평생 하고픈 일이라고는 말 못하겠다”며 “재미를 못 느끼면 못 버틸 것”이라는 말이 오히려 정직하게 들린다. 실제 6살짜리 아역을 극중 아들 삼아 호흡을 맞춘 비결을 묻자 “낳은 정 보다 기른 정이라는 마음으로 늘 곁에 끼고 지냈다”고 답한다. 자신을 ‘정남엄마’라고 부르는 아역배우와 놀아주고 안아주다 집에서는 몸살을 앓기도 했단다.

이런 방식으로 배역에 몰입하는 이 자그마한 체구의 배우를 두고 강형철 감독은 “악바리”라고 말한다. 황정남이 어린 아들을 잠시 잃어버린 줄 알고 찾아 헤매는 절절한 심경은 3일 밤낮으로 탈진상태까지 겪으면서 찍었다. 황정남의 숨은 재능인 가창력을 뽐내는 장면은 생전 처음 손에 잡은 기타를 맹연습해 찍었다.

이 배우는 좋아하는 연기자로 배종옥·김해숙을 꼽았다. “드라마에서 그 분들이 울면 나도 울고, 웃으면 나도 웃게 된다”는 말이 그의 지향을 가늠하게 한다.

글=이후남,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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