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파워엘리트 ⑩ 백악관 예산국장 내정 피터 오스자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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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에겐 연방 예산 어디에 시체가 묻혀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도가 필요 없다(Peter doesn’t need a map to tell him where the bodies are buried in the federal budget).”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5일 피터 오스자그(39·사진) 의회 예산국장을 백악관 예산국(OMB) 국장으로 내정했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시체’란 말은 예산을 낭비하는 쓸모없는 사업을 말한다. 오바마는 이날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쓰면서 낭비적 예산은 전면 수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백만장자 농부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건 낭비의 대표적 사례”라며 “필요한 투자를 하면서 불필요한 지출은 없애야 한다”고 했다. 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짜 온 예산 프로그램에 칼을 대겠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그 일을 오스자그에게 맡겼다. 오스자그가 지난해 1월부터 정부예산을 심의하는 의회 예산국(CBO) 책임자로 일해 왔으므로 예산 문제를 속속들이 잘 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BO는 초당적 기구다. 오스자그는 이번 대선 때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의회에서 오바마와 종종 만났다. 상원의원 오바마는 예산에 대해 모르는 게 있으면 그를 불러 물어봤다.

오스자그는 오바마 캠프에서 백악관 예산국장직을 제의하자 처음엔 사양했다. OMB가 CBO보다 크고 중요하지만 CBO에서 남은 임기 2년을 더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오바마는 그를 직접 만나 예산 개혁에 대한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고 설득했다.

5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OMB의 규모는 CBO의 두 배 이상이다. 정부예산안을 편성해 의회에 제출하고 각종 예산집행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관이다.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 결정하는 곳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한도 막강하다. 오바마는 이라크전 등 부시 행정부의 여러 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예산은 없어지거나 대폭 감축될 전망이다. 특히 국방부 예산은 여러 곳이 칼질당할 것으로 보인다.

오스자그는 건강보험·에너지·기후변화 분야에 해박하다. 그는 “국가 경쟁력의 요체는 기술혁신인 만큼 기술을 개발하는 이들에겐 상을 줘야 한다”고 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에 있을 땐 “부시 대통령은 무조건 세금을 깎아 놓고 보자는 대책 없는 지도자”라고 비판하면서, 같은 공화당 출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유연성을 배우라고 촉구했다. 그는 CBO에 있으면서도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기탄없이 밝혔다. 경제 블로거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던 그의 블로그는 25일 그가 OMB 책임자로 내정되자 폐쇄됐다.

헝가리계 이민자의 자손인 오스자그는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이어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엔 대통령 경제특보와 경제자문회의(CEA) 소속 경제보좌관으로 일했다. 백악관을 떠난 뒤 경제 컨설팅 회사를 만들었으며,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브루킹스에선 민주당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준 해밀턴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이 프로젝트는 클린턴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의 구상을 구체화한 것이다. 오스자그가 티머시 가이스너 재무장관 내정자,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과 함께 ‘루빈 사단’으로 분류되는 건 이 때문이다.

오스자그는 달리기광이다. 마라톤과 하프 마라톤 경기에 여러 번 출전했다. 컨추리 뮤직 콘테스트에도 나갈 정도로 그쪽 장르의 음악을 좋아한다. 틈만 나면 인물 전기와 역사책을 잡는 독서광이기도 하다. 이혼남으로 1남1녀가 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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