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음악 키운 건 문학과 미술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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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 시카고 태생의 피아니스트 엘리자베스 조이 로( 27·사진)가 어린 시절 쓰던 방은 도배를 자주 새로 해야 했다. 틈만 나면 벽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연필·볼펜에서 크레용까지 모든 도구가 동원됐다.

책에 낙서를 하는 것도 로의 버릇이었다. 소설·수필을 가리지 않고 읽었던 그는 자신이 새로 이야기를 짓고 등장인물을 만들어 책 여기저기에 적어놓았다.

학교에서는 “하루종일 꿈꾸는 듯해 이상하다”는 걱정까지 들었다.

20여년 후 그는 줄리아드 음대에서 매년 한 명의 피아니스트를 선정해 주는 ‘윌리엄 페첵상’을 받았다. 시카고 트리뷴, 뉴욕 타임스 등은 각각 “진정으로 환영해야할 아티스트” “빛난다”고 그녀를 높였다. 로의 최근 무대는 카네기 홀, 링컨 센터, 케네디 센터 등이다.

25일 호암아트홀에서의 첫 내한 독주회는 로의 폭넓은 관심이 빛을 발한 무대였다.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문화가 사망한 것을 묘사한다. 타락과 나태함이 전쟁의 원인 중 하나였음을 암시한다.”

로는 자신이 직접 적은 프로그램 노트에서 모리스 라벨의 ‘라 발스’를 이렇게 묘사했다. ‘왈츠’라는 의미의 이 곡은 뒤로 갈수록 사회의 타락과 전쟁을 묘사하는 듯 비꼬는 듯한 춤곡으로 변해간다.

로는 “라벨의 모더니티에 대한 선견지명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꼼꼼한 연구에서 나온 확신에 찬 표현이 눈에 띄었다.


바흐·리스트·무소르그스키와 현대 작곡가 존 코릴리아노를 연주한 그는 작곡가가 영감을 받았던 문학 작품과 역사적 배경을 일일이 찾아 해석을 붙였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작품 전체를 보는 능력으로 주도면밀한 연주를 펼쳤다.

“고전의 힘인 것 같아요. 영문학은 물론 러시아, 독일 등의 위대한 작가 책을 많이 읽었죠. 음악과 문학에 대한 저의 관심은 거의 같은 수준이에요.”

로는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 받은 영감이 음악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토마스 만, 마르셀 프루스트, E.M 포스터의 소설 속 음악에 관련한 연구로 줄리아드 음대에서 우수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에서 표현됐다.

그는 “호암아트홀과 옛 호암갤러리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전시회장의 그림들을 묘사한 이 작품에서 어릴 때부터 키워온 예술적 영감이 십분 발휘됐다. 음악가가 음악에 갇히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이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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