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파문>속전속결에 돌입한 검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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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보그룹 특혜의혹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의 발걸음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 검찰은 수사 착수 이틀만인 28일 한보철강 정일기(鄭一基).홍태선(洪泰善)전사장등 고위 임원 3명을 전격 소환,조사하고 중수부2과외에 1과및 3과 인력까지 투입하는등 총력전 태세다. 압수수색한 장부를 분석해 충분한 정황증거를 확보한뒤 관련자들을 소환하는 종전 검찰수사의 수순(手順)으로 볼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검찰이 이처럼 수사를 서두르는 이유는 정가(政街)를 중심으로한보 배후세력에 대한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는데다 국정조사권을발동할 임시국회가 2월3일로 예정되는등 촉박한 시간 때문. 검찰 주변에선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사건등 규명하기가 비교적 쉬운 혐의로 정태수(鄭泰守)총회장등을 일단 사법처리한뒤 기소전까지 시간을 두고 금융계와 정치권 로비에 대한 수사를 벌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수수사에 정통한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한보그룹 규모 정도면장부를 뒤져 증거를 잡는데 한달 이상의 시간과 많은 품이 들어야 한다”며“따라서 의사결정이 총수에게 집중된 경우 총수의 신병을 먼저 확보해야 자금 관계자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입을 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검찰은 특히 경리직원이 비자금 장부를 들고 잠적했던 91년 수서(水西)사건 때처럼 결정적인 증거를 숨기거나 없앨 가능성이많다는 점도 고려하고 있다.장부압수와 동시에 사장급 3명을 포함해 한보그룹의 경리 관계자 10여명을 한꺼번에 불러 조사한 것도 사전에 입맞추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룹내 핵심 재무통인 한보철강 정일기 전사장과 김종국(金鍾國)전재정본부장에 대한 조사 결과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국세청 출신의 鄭사장과 노태우(盧泰愚)씨 비자금사건때도 검찰에 불려와곤욕을 치른 金전재정본부장은 그룹내 자금흐름을 꿰뚫고 있어 이들이 입을 열 경우 사건이 쉽게 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총수의 최측근으로 입이 무거운 이들을 선뜻 소환한 점으로 미뤄 검찰은 이미 이들을 다그칠 어느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볼 수 있다. 압수수색영장에 적용된 혐의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인 점도눈여겨볼 만하다. 鄭총회장이 금융계나 정계 일각에 뿌린 로비자금(특경가법상 증재및 수재)의 가닥을 잡았거나 담보가치를 과대 계상하는등 대출받기 위해 금융기관을 속인(특경가법상 사기) 증거를 포착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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