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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가 좋다] 패러글라이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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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열차도 무서워 못 타는데 웬 패러글라이딩이냐고요? 안심해도 돼요. 간을 콩알만 하게 하는 고속 급강하와 급회전이 이어지는 청룡열차와는 다르지요. "

지난 19일 경기도 용인의 해발 473m 정광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한국패러글라이딩학교 회원들이 창공을 날 채비를 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장비를 갖고 활공장으로 올라가서→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라→무사히 착륙장에 내려앉은 한국패러글라이딩학교 회원들. [용인=안성식 기자]

교장 원용묵(35)씨는 패러글라이딩을 "고소공포증만 없다면 누구나 시원하고 통쾌하게 즐길 수 있는 레포츠"라고 소개했다. 안정된 속도로 천천히 활공하기 때문에 겁을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 15㎏ 배낭에 모든 장비 쏙

실제로 그랬다. 마치 스키장 리프트를 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40명 회원 중에는 20대 여성도 꽤 있고, 60대 남자도 있다.

"항공대 조종학과를 다니다가 다리를 다쳐서 중퇴하고 공무원 생활을 했어요. 늘 하늘을 나는 꿈이 가슴속에 남아 있었지요. 정년퇴직을 한 뒤 3년 전에 시작했어요. 묘한 고독감과 자유를 만끽하지요. 건강이 유지되는 한 계속할 겁니다." 올해 63세인 장충량씨의 얘기다. 그는 3년간 1백80차례 비행을 했다. 대개 일주일에 두번씩 하늘을 난다. 한 시간반 동안 탄 기록도 있고, 상승기류를 타고 고도 1800m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지난 2월에 시작한 서병선(42.광고업)씨는 언젠가 차를 몰고 양평 일대를 달리다가 하늘을 잠자리처럼 날아다니는 사람을 보고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그는 매주 토.일요일 이곳에서 활공을 한다. 평일에도 일을 하다가 뛰쳐나오기도 한다.

패러글라이딩은 가장 간단한 장비로 인간이 하늘을 날게 하는 레포츠다. 낙하산의 천에 해당하는 캐노피와 150여 가닥의 산줄로 이뤄진 글라이더, 비행할 때 의자처럼 앉을 수 있고 몸을 보호해주는 하니스, 그리고 헬멧과 무전기면 족하다. 초보단계를 벗어나면 여기에 고도계와 위성항법장치(GPS)를 더한다. 전체 무게는 15㎏ 안팎. 배낭처럼 생긴 하니스에 챙겨넣으면 끝이다. 대부분의 활공장은 정상까지 비포장이지만 도로가 나있어 장비를 지고 등산해야할 걱정은 없다.

*** 훈련 네번 하면 비행 가능

"대개 일주일에 한번씩 훈련해 4주 만에 단독비행을 합니다. 중급자 이상이면 상승하는 복사열기류 등을 타고 높이 올라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떠 있을 수 있지요." 국민생활체육협의회 패러글라이딩연합회의 최현철 사무과장의 설명이다. 의자에 앉아 양쪽 조종줄로 조종을 하면서 원하는 지점에 내려앉는다. 오른쪽 줄을 당기면 오른쪽 날개 뒷부분이 밑으로 내려가면서 오른쪽으로 돌고, 왼쪽을 당기면 왼쪽으로 돈다. 낙하산과 달리 착지(着地)할 때 무릎에 저항도 없다.

그래서 정광산 자락과 양평 용문산, 서해 대부도 바닷가 등에 가면 주말은 물론 주중에도 하늘을 수놓는 패러글라이더들을 쉽게 볼 수 있다. 2인승 비행(탠덤)도 있다. 기자도 함께 탄 조교의 도움을 받아 활공의 묘미를 만끽했다.

최준호 기자<joonho@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 공인 스쿨서 배워야 안전…훈련방법과 안전수칙

패러글라이딩은 아래로 내려가는 낙하산(패러슈트)과 옆으로 나는 행글라이딩을 합친 형태다. 낙하속도는 바람의 세기에 따라 시속 13~44㎞ 정도. 낙하산보다 느리고, 비행속도도 행글라이딩보다 느려 '가장 안전한 비행'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수백m 상공을 날아다니려면 안전수칙이 중요하다.

입문은 반드시 공인된 학교에서 하도록 한다. 국내에 패러글라이딩 관련 단체는 동호인 클럽을 포함해 300개가 넘지만 한국활공협회(www.khpga.org)가 공인한 곳은 22개뿐이다. 강습비가 평균 이하로 싸다면 일단 의심해야 한다.

훈련은 땅 위에서 이.착륙 요령을 익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충분히 익힌 뒤 실습을 나간다. 숙련된 조교(윈드더미)가 먼저 출발하면 뒤따라 활공한다. 무전기로 전해지는 조교의 지시에 따라 비행하고 착륙한다.

초급자가 중.고급자의 장비를 갖추는 건 위험하다. 고급자용 장비는 안전보다는 속도와 기술 구사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가장 위험한 적은 거센 바람이다. 따라서 날씨, 특히 바람을 잘 읽는 공인된 학교의 자격증 소지자와 동행하는 것이 필수다. 봄에는 갑작스러운 돌풍이 불 때가 있어 비행을 자제하는 게 좋다.

*** "한번 타면 춤바람보다 무서워"…입문 2년새 400차례 비행 조경주 주부

"1000m 상공에서 구름과 생바람을 맞는 그 느낌을 표현할 단어가 마땅찮아요."

정광산 활공장에서 만난 조경주(35)씨는 10, 5세 남매를 둔 주부다. 입문한 지 2년이 채 안됐지만 4백차례 가까이 비행을 했다. 매 주말에만 찾던 정광산을 직장을 그만둔 지난해 봄부터는 "해만 뜨면 나왔다"면서 "춤바람보다 무서운 게 패러글라이딩"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늘을 날고나서부터 많이 변했다고 했다. "낯가림이 심해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는데 이제 하는 일마다 자신감이 붙었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졌어요."

입문 전 58㎏이던 체중도 52㎏까지 줄었다. 요즘은 비행의 안전을 위해 오히려 몸을 불리고 있는 중이다.

입문 6개월 만인 지난해 3월에는 정광산 활공장에서 충북 충주까지 60㎞를 4시간45분 동안 비행하는 대기록도 세웠다. "충주의 한 시골 논 가운데 내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성취감이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이 기록으로 조씨는 지난해 대통령배 패러글라이딩 대회 여자 크로스컨트리 부문 1위를 했다.

그는 원래 스포츠와는 담을 쌓았었다. 취미도 소질도 없었다. 그런데 직장과 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던 어느 날 문득 삶이 무료해 패러글라이딩을 찾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공군 전투기와 민항기를 몰았던 조종사였기에 막연히 하늘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게 하늘과 인연의 전부였다. 처음엔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남편도 이젠 후원자가 됐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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