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미묘한 시기 미묘한 귀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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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지난해말 김경호(金慶鎬.61)씨 일가족등 17명의 집단귀순에이어 22일 김영진씨등 두 가족 8명이 귀순해왔다.
최근 이어진 이들의 귀순은 최소한.한국판 엑서더스'전조로 기록될 만하다.두 가족이 한꺼번에 온 것이나 서해상을 귀순루트로잡은 것도 처음이다.두 가족이 밀선을 타고 표류하다 해경에 구조됐다는 안기부 발표는 더욱 극적이다.
그리고 줄을 잇는 북한주민들의 탈북소식과 함께 들려오는 북한동포의 굶주림 얘기에 국민들은 연민의 정을 금치 못한다.또 그런만큼 만고신산을 겪으며 자유와 쌀을 찾아 우리품을 찾아든 그네들에게 위로와 온정을 보내는 우리 국민들이다.다 른 한편으론이들의 귀순이 북한체제에 대한 염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자신감을 갖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22일 김영진씨 일가족등 8명이 해경 헬기에 실려 인천해경 헬리포트에 내리는 순간 많은 국민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귀순자들의 모습이나 귀순과정에 석연치않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귀순은 분명한.사실'이되 당국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웠던 탓인지도 모른다.
안된 얘기지만 귀순자들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다.밀선에 몸을 맡기고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서해바다의 풍랑을 헤쳐온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김경호씨 일가족 귀순때의 초조.긴장과는 사뭇 대조적이다.실제 본사에는 이같은 느낌을 전달해온 독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두 가족이 입고온 점퍼나 모자가.필라'.아디다스'등 유명 외제품인데다 말쑥한 차림새도 그랬다.중국에 머물며 치밀한 준비끝에 귀순한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밀선이 우리 영해상 격렬비열도에 이들을 내려준 것도 쉬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22일은 파도가 거세 구조나온 해경 구조선도 헬기를 요청할 정도였다.
북한인이 귀순을 요청한.긴급상황'인데도 해경에만 연락한 점도쉬 납득가지 않는다.긴급상황 속에서 군함을 보유한 해군에 구조를 요청하지 않은 것이다.밀선이 넘어오고 구조를 요청한 상황이라면 즉각 해군작전사령부 상황실과 합참 상황실에 보고되는 것이관례지만 이것도 없었다.적어도 긴급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뒤늦게 해군 기지가 중국쪽에서 다가오는 괴선박을 발견,해경에통보했다는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22일 합참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전혀 감지하고 있지 않았었다.
한마디로 두 가족의 귀순은 엄연한 현실이지만 뭔가.개입내지 의도'한 냄새를 풍긴다..개입.의도'의구심을 부채질하는 것은 국내정국 상황이다.노동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권이 궁지에 몰리는시기적 상황이 무엇보다 걸린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당국이 북한주민 귀순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인상조차 주어서도 곤란하다.이는 안보문제이기 때문이다.귀순은 남북문제의 큰 틀에서 다뤄져야 하는게 아닌가.
오영환 통일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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