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獨.체코 화해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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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30년대 국제정치는 영토측면에서.가진 자'와.못가진 자'의 대립으로 설명할 수 있다.전자인 영국.프랑스.미국은 후자인일본.이탈리아.독일의 대외팽창을 어느 정도 인정함으로써 국제질서의 안정을 유지하려 했다.소위 유화(宥和)정책 이다.일본의 만주 침략,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주데텐 합병이 그 예들이다.
유화정책의 정점(頂點)에 달한 것이 38년 9월의 뮌헨회담이다.뮌헨회담을 주도한 영국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독일의 주데텐 합병을 허용하면 독일내 온건세력이 힘을 얻어 대외침략정책이 약해지리라 기대했다.그러나 1년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기대는무산(霧散)되고 말았다.
독일과 주데텐의 관계는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보헤미아는 독일인 농민.상공업자들의 이주를 장려,각종 특권을 부여했다.독일인들은 세력을 키워나갔으며,특히 17세기 이후 오스트리아에 의한 게르만화(化)정책으로 독일인 우위는 결정적인 것이됐다.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후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이 세워지면서독일인들은 열세에 몰렸다.
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독일에 흡수한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민족자결을 부르짖으면서 주데텐 합병(合倂)의사를 드러냈다.히틀러는 기만적인 뮌헨회담을 통해 합병에 성공했다.히틀러는 다음해3월 체코슬로바키아를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시 켜 체코를 독일에 합병시키고,슬로바키아는 보호국으로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후 체코슬로바키아는 주데텐을 되찾는 한편 대대적인 독일인 강제추방을 실시했다.이때 3백만명에 달하는 독일인이 국외(주로 서독)로 추방됐다.
21일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만난 독일과 체코 양국총리는 화해협정에 공식 서명했다.독일의 과거청산 완결편으로 평가되는 이날 서명식에서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우리는 용서를 바라며,또 용서하고 싶다”는 말로 주데텐 합병의 과오를 솔직 히 인정하는한편,추방된 독일인이 받은 고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일국교정상화 이래 30년이 지난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한일합방의 합법성 주장,종군위안부문제 책임회피,독도 영유권주장 등잘못된 과거사 반성에 인색한 일본인들이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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