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피었다’가 아닌 ‘꽃이 피었다’로 쓴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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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소설가 김훈(60·사진)의 장편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작가는 처음엔 “꽃이 피었다”가 아니라 “꽃은 피었다”로 적었다. ‘은’이 ‘이’가 되기까지 담배 한 갑을 태웠다. 왜 ‘이’어야 했을까. 작가가 4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 『바다의 기별』(생각의 나무)에서 자세한 이유를 밝혔다.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읽었습니다.”

그는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언어를 추구한다. 담담한 문장으로 더 큰 울림을 주는 김훈의 문체 뒤엔 그런 언어관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오래 병석에 누워 계셨고,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었다. 병장 계급장을 달고 외출 나와서 가끔씩 아래를 살펴드렸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는 확실성으로 그 언저리에 와 있었다. 아래를 살필 때, 아버지도 울었고 나도 울었다.”

30여 년 전 언 땅에 아버지를 묻던 김훈은 악착스레 울어대는 여동생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요사스럽다. 곡을 금한다.”

가부장적이고 예스러운 그의 문체는 이 두 문장만으로도 설명된다. 하지만 행간엔 깊은 정과 섬세함이 있다. 1975년 2월 영등포 교도소 앞. 김지하 시인의 가석방을 기다리며 얼어버린 짬뽕 국물을 들이켜던 기자 김훈은 갓난 아기를 업고 언 발을 동동거리는 할머니를 발견한다. 사위의 석방을 먼발치에서 기다리던 고 박경리 선생이었다. 그녀를 알아본 건 그 혼자였지만 기사엔 한 줄도 넣지 않았다. “지방판 마감이고 유신독재고 뭐고 간에 어서 빨리 저 여인네의 용무가 끝나서 그 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이 추운 언덕의 바람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만을 했다.”

『바다의 기별』은 멀게는 1994년부터 최근까지 쓴 산문 11편과 강연 2건을 고쳐 담았다. 지금까지 그가 지은 책의 서문과 수상 소감이 부록으로 담겼다. 김훈의 흔적을 주의 깊게 추적했다면 이미 본 듯한 글일 수 있다. 그러나 작가 김훈의 매력을 총괄해 맛보기엔 이만한 텍스트도 없을 듯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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