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요구 맞춘 시스템과 원서 100권 읽는 학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10년 미국 아이비리그 110명 진학, 매년 300명 이상이 국내 명문대 진학, 최근 10년간 판검사 임용 1위. 신흥 명문고로 떠오르고 있는 대원외고의 성적이다. 작년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대원외고가 민족사관고와 함께 미국 명문대 진학률 40위 안에 들었다고 보도했고, 뒤이어 뉴욕타임즈와 뉴스위크 등이 대원외교의 교육방식에 대해 집중보도했다. 올해는 특히 대원외고와 같은 재단인 대원중학교가 논란 끝에 국제중학교로의 전환이 승인되면서, 대원외고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앙SUNDAY는 이번주 대원외고 교육의 비밀을 들여다봤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대원외고 3학년 박예송(18)양은 올해 여름방학을 앞두고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에게 e-메일 한 통을 보냈다. “교수님 연구실에서 생물학 실험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최 교수는 박양을 동물행동학 실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박양은 방학동안 청개구리의 피부가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관찰해 논문 형식의 보고서를 써냈다.

박양의 꿈은 인지과학 분야의 과학자가 되는 것이다. 인지과학에 필요한 생물학과 심리학·철학·언어학 교과과정이 두루 강한 미국 예일대에 진학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해외유학 프로그램(GLP:Global Leadership Program)을 실시하는 대원외고에 입학했다. 올 초 응시한 SAT(미국의 대입 수능시험)에서 그가 받은 점수는 2400점 만점에 2380점. 인터넷 기반 토플시험(iBT)의 점수는 120점 만점에 114점으로 특급 수준이다.

해외유학 프로그램이 생긴 1998년 이후 10년간 박양과 비슷한 꿈을 가진 학생들이 대원외고를 거쳐 갔다. 2000년 9명의 해외대학 진학자 배출을 시작으로 매년 수십 명의 졸업생이 미국 명문대 입학 자격을 따냈다.

국제반 2학년 학생들이 교사 알렉산더 랜프리드에게 영미문학 수업을 받고 있다.

이런 수치가 대단한 것이라는 사실은 최근에서야 비로소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대원외고의 지원자 대비 미국 명문대 진학률이 전체 13위라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가 나왔다. 특히 올 4월 뉴욕 타임스는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받은 샘 딜런 기자를 한국에 파견해 대원외고 현지르포 기사로 일요판 1면을 장식했다. 8월엔 뉴스위크지가 미국의 주요 명문 사립고보다 높은 진학률을 보이고 있는 대원외고와 민족사관고를 소개했다. 대원외고 교육의 비결을 묻기 위해 기자는 20일 대원외고를 찾아 최원호 교장을 만났다.

-98년 국내 처음으로 유학 프로그램을 도입했다는데.
“도입 당시 희망자 23명이 모였다. 2명의 외국인 교사를 채용해서 입학 지도를 했다.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어서 지원자들이 직접 손으로 편지를 써서 미국 대학의 입학 담당자에게 보내야 했다. 그런데 의외로 진학 성적이 좋았고 점차 희망자가 늘다 보니 유학 프로그램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을 갖추게 됐다. 우리는 미국 대학에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그에 맞는 활동과 교육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제공했고 지금은 상당한 노하우와 시스템을 구축했다.”

-특목고가 입시과열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 학교야말로 인성 교육을 가장 열심히 하는 학교라고 자부한다. 우리는 학생의 경쟁력을 학교에서 보증해 주는 인증제도를 실시한다.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의 봉사활동을 해야 하고 리더십 교육도 받아야 한다. 이를 심사하기 위한 심사위원회도 있다.”

-특목고가 상위 1%를 위한 귀족학교라는 지적도 있다.
“학부모 분석을 해보면 개인사업가·의사·법조인·공무원·외교관 등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귀족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나. 오히려 중산층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학부모가 대원국제중에 입학하면 대원외고 입학이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국제중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주지 않기 때문에 외고 입학에 직접적인 혜택은 없을 것이다. 다만 교육열이 높은 한국의 학부모들이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것을 이해한다. 우리 학교는 외국어 교육을 위한 많은 인적 자원과 교육자료를 갖고 있다. 국제중 운영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대원외고 국제반 학생들은 입학 때부터 평균 토플점수가 115점일 정도로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 절반 정도는 해외체류 경험이 있다. 중학교 내신성적이 6~7%에 들어가는 학생들만 대원외고 입학을 허락받는다. 입시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모인 것이 대원외고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3학년 김소정양은 “유학 프로그램에서는 내신 경쟁이 덜하기 때문에 해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서로 협동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반 학생들은 방과 후 외국인 교사들에게서 영어 작문과 영미 문학 읽기, 미국·세계 역사 등을 배운다. 졸업 때까지 이들은 보통 100여 권의 영어 원서를 읽게 된다. 프린스턴과 펜실베이니아 대학 등 미국 명문대 출신 교사들이 직접 입학 지도를 한다.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정규 교과과정과 해외 유학 준비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는데,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를 두 개 다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국제반 학생들은 하루에 4~5시간밖에 자지 못하며 과제와 시험 준비에 매달려야 한다.

학생 자신들의 열의는 대단하다. 영어 작문을 하나 하면 교사에게 예닐곱 번 이상의 첨삭을 요구하곤 한다. 매주 수십 명의 학생들의 글을 일일이 첨삭해야 하는 외국인 교사들은 걸어 다니면서도 첨삭작업을 해야 할 정도다.

미국 윌리엄스대를 졸업한 작문 교사 조셉 포스터(36)는 “한국 학생들은 스스로가 혹독한 피드백을 원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한국 학생들에겐 공부해야 할 게 너무 많다. 그들에게는 입시라는 목적과 상관없는 자유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계에서는 “미국 유학을 맞춤형으로 준비하는 학원”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미국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현지 적응 문제도 또 다른 숙제다. 김창호 대원외고 교감은 “예전에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는 일도 많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며 “최근 우리 학교를 방문한 미국 대학의 입학관계자들도 한국 학생들의 어학 실력을 많이 칭찬한다”고 전했다. 지난 10년간 미국이 아닌 나라로 유학을 간 졸업생은 단 2명뿐일 정도로 미국에 편중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유순종 국제진학부장은 “최근 미국 대학에서 한국 학생들이 스코어(시험 점수)에만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학생들이 보다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종찬 기자 jong@joongang.co.kr

[J-HOT]

▶ 이헌재 리더십 그립다…술 한잔땐 "욕 안 먹겠나" 호통

▶ "미네르바, 이름만 대면 안다…깜짝 놀라 뒤집어질 것"

▶ 토요일마다 밖에 나가는 남편, 아내가 등 떠밀어

▶ "삐라 중단…단, 변화 없으면 북한 돈 넣어 뿌릴 것"

▶ 공항서 80여일째 생활…영화 아닌 실제상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