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억 장학금에 ‘시골 8학군’된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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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군 초평면 초평초등학교 학생들이 20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스쿨버스에 오르고 있다. [진천=김성태 프리랜서]

20일 오후 4시 충북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 초평초등학교 교문. 이 학교 학생 20여 명이 교사들의 인솔에 따라 줄을 서서 차례로 버스에 오른다. 초평면 주민들이 만든 ‘초평면장학회’ 기금(총 75억원) 중 일부로 일주일 전부터 운행하는 45인승 스쿨버스다. 버스는 매월 350만원에 임차해 운행하고 있다. 학생을 실은 버스는 마을 곳곳을 돌며 학생들을 내려주고 한 시간 뒤쯤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에서 2㎞쯤 떨어진 중석리 마을에 사는 한민성(3학년)군은 “시내버스를 타거나 부모님이 차로 데려다 줘야 학교에 올 수 있었는데 스쿨버스가 생겨 편해졌다”며 활짝 웃었다.

시골 학교가 스쿨버스를 도입한 데는 사연이 있다. 1923년 문을 연 초평초교는 9월 초만해도 학생 수 52명으로 폐교 위기(폐교 대상 50명 이하)에 놓였다. 그러나 최근 두 달 새 무려 32명이 늘어 현재 전교생이 84명으로 불었다. 마을에 거액의 장학기금이 마련됐다는 소식을 접한 외지 학부모들이 자녀를 전학시켰기 때문이다. 10여 명은 3㎞ 떨어진 진천읍 삼수초교에서 옮겨왔다. 나머지 20여 명은 진천군·음성군과 제천시 등 인근 지역에서 왔다. 학생 수가 늘면서 장거리 통학생이 증가하자 장학회가 스쿨버스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영어 원어민 교사 채용=초평면은 1522가구에 3700여 명이 살고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다. 2006년 6월 초평면과 인접한 음성군 맹동면이 쓰레기 매립장(광역폐기물종합처리시설) 후보지로 거론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처음엔 초평면 주민들이 거세게 반대했다. 그러나 위로금 110억원 지급 조건에다 “오염원 발생을 최소화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군청의 약속을 받고 올 3월 후보지 선정을 수용했다.

이어 35개 마을 이장단 등 주민들은 110억원의 사용 방안을 놓고 논의했다. 격론 끝에 75억원은 장학기금으로 만들고, 나머지 35억원은 주민숙원사업비로 쓰기로 결정했다. 임정열(46) 초평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은 “낙후된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를 살리는 게 급선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12월 정식 출범하는 장학회는 내년까지는 초평·구정초교 등 관내 2개 학교 인프라 구축비를 지원키로 했다. 초평초교에는 우수 영어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고 강당을 지어주며, 골프로 특성화한 구정초교에는 골프연습 시설을 확충키로 했다.

조만간 세부적인 장학금 지원 방안도 마련한다. 여기에는 부모가 초평면에 거주하는 학생이 대학에 진학할 경우 등록금 전액을 지급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사 행렬 이어져=고위숙(45·여)씨는 제천시에서 딸 조은형(초평초교 4년)양과 함께 초평면으로 이사 온 경우다. 고씨는 “엄청난 규모의 장학금 조성 소식을 듣고 전학시켰다” 고 말했다. 초평초교 인근에 있는 구정초교도 학생 수가 9월 초 52명에서 현재 58명으로 6명 늘었다.

장학기금 마련 소식이 알려지자 두 학교에는 경기도·충남 등 전국에서 장학금과 전학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학부모는 직접 학교를 방문, 장학금 지원 방안을 문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을에 주택이 부족해 이사를 오지 못하는 실정이다. 초평초교 마창선 교감은 “문의전화만 수백 건이 왔지만 월셋방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자 진천군은 초평면에 아파트 건립을 추진 중이다. 김문환(61) 장학회장은 “장학기금 마련으로 침체된 마을에 활기가 돌고 있다”고 전했다.

진천=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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