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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이제는 산업이다] 3. 신제품 인·허가에만 3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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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의료산업과 생명공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데도 인.허가권을 쥔 정부기관의 전문성이 못따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식품의약품안전청 직원이 실험실에서 신약 성분을 검사하고 있는 모습. [김춘식 기자]

2000년 12월. 바이오벤처기업 마이진은 DNA칩 개발에 성공했다. 피 몇 방울로 유전자를 분석, 몇분 만에 암과 만성질환의 발병을 미리 알려주는 기술이다. 이듬해 6월엔 이를 응용,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되는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의 감염 여부를 진단하는 DNA칩을 개발했다.

그러나 3년여가 흐른 2004년 5월, 이 칩은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아직 못 받았기 때문이다. 제품 개발을 주도한 삼성제일병원 한인권 박사는 "이럴 줄 알았으면 미국에서 허가받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진이 식의약청 문을 두드린 것은 2001년 가을. 하지만 식의약청에는 DNA칩 전문가도, 전담 부서도 없었다. 부서를 정하는 데만 꼬박 1년을 보냈고 임상시험 허가를 받는 데 또 8개월이 흘렀다. 임상시험 결과를 제출하고 1년이 다된 지금까지 결론이 안 났다.

한박사는 "보완할 내용이 대부분 서류 미비, 문서 재작성 등 비본질적인 부분"이라며 "식의약청 내에서도 부서마다 입장이 달라 어느 장단에 춤을 출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한박사가 더욱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유연성 없는 제도. 미국 D사의 암 진단칩은 미국 FDA의 정식 허가는 올해 초에야 땄지만 개발 직후인 2000년부터 국내.외에서 팔리고 있다. 미국은 진단칩처럼 인체에 직접 해가 없는 제품은 정식 허가 이전이라도 조건부 판매를 허용한다. 판로를 열어줘 의료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의료.생명공학산업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분야다. 우리나라도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의 하나로 선정, 지원하고 있다. 이미 세포치료제.유전자치료제.DNA칩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개발 결과를 산업으로 연결하는 인.허가 과정이 '병목'에 걸려 있다. 개발능력은 선진국의 80~90% 수준까지 다다랐지만 안전성 평가기술은 30%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 관문을 틀어막고 있는 것은 역시 정부다. 지난해 말까지 세포치료제.유전자치료제.DNA칩 등 생명공학 제품 허가신청은 총 26건. 이 중 식의약청 허가를 받은 것은 세건뿐이고 임상시험 승인도 다섯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18건은 자료 보강 등 '상담' 단계다. 업체의 제품신청 허가는 매년 두세배 늘지만 허가.승인 건수는 제자리 걸음이다.

식의약청은 전문인력 부족을 호소한다. 전체 직원 817명 중 생명공학(BT) 전담 인력은 18명에 불과하다. 미국 FDA는 전체 직원 1만2000명에 육박하고 예산도 우리의 20배가 넘는다.

심창구 식의약청장은 "올해 초 생명공학 제품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100명의 인력 보강을 정부에 요청했으나 12명만 충원됐다"고 덧붙였다.

천신만고 끝에 식의약청의 허가를 받아도 다 끝난 게 아니다. 외국에서 수입하던 의료기기를 국산화해 꼬박 2년 만에 식의약청 허가를 받은 A사. 이 회사는 또 보건복지부의 보험인정 허가를 받느라 1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제약산업도 보험 재정 절감 정책에 막혀 발전이 더디다는 목소리가 있다. 제약사들은 특히 정부의 보험 약가 조사 제도가 행정편의로 시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국 의원.병원.약국이 4만개를 넘는데도 1%도 안 되는 100개만 조사해 약품 가격을 깎는다. 게다가 약가를 인하하면 제약사들이 효능을 약간 개선한 신제품을 내놓기 때문에 이 정책의 효과도 별로 없다.

100병상 이상 병원은 제약회사와 직거래를 못하고 도매상을 거쳐야 하는 간접 납품제도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제약사들은 이 때문에 근근이 유지되는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이 희생된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특별취재팀=신성식.정철근.이승녕.권근영 기자, 오병상 런던 특파원, 유권하 베를린 특파원<medic@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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