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음반100年史>1.축음기의 발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올해로 음반 탄생 1백주년을 맞는다.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것은 1877년의 일이지만 음반이 대량생산돼 시판되기 시작한 것은 1897년 EMI의 전신인 그라모폰사가 런던에 설립되면서부터다.레코딩은 음악사에서 악보 인쇄술의 발명에 이은 기술혁명으로 음악의 대중적 보급과 상업화 추세를 몰고 왔다.레코딩에 얽힌 에피소드.진기록과 함께 살펴보는 음반 1백년사를 매주 연재한다. [편집자註]발명왕 에디슨이 1877년 11월 미국 특허국에 제출한 축음기의 이름은.토킹 머신'.글자 그대로 말하는기계에 불과했다.1878년 에디슨은 수첩에다 자신이 발명한 유성기(留聲機)의 용도를▶속기사없이 받아쓰기▶시각장애자의 독서▶웅변 교 육용▶음악의 녹음과 재생▶사람의 육성이나 유언의 보관▶뮤직박스나 장난감용▶귀가시간과 식사시간을 알리는 기능▶발음의정확한 교정▶강의 노트 필기 대용▶전화통화 내용의 영구 보존등10가지로 메모해 놓았다.
지금도 녹음기는 이같은 다양한 기능으로 사용되지만 에디슨 자신도 이 기계가 음악의 녹음과 재생을 위한 수단으로 널리 보급돼 음악의 상품화를 재촉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1877년 8월12일 에디슨은 뉴저지에 있는 작업실에서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채 사상 최초의 녹음을 시도했다.그때 노래는 유명성악가나 바이올리니스트도 아닌 자신과 친구들이 함께 부른 동요.메리에게 작은 양이 한 마리 있다네(Mary Has A Little Lamb)'였다.그러나 에디슨의 녹음방식은 왁스를녹인 원통에 바늘로 기록하는 것으로 오늘날처럼 대량생산을 위한것으로는 역부족이었다.에디슨의 축음기는 1878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출품됐다.
그후 1888년 런던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열린 헨델 페스티벌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이집트의 이스라엘인'이 에디슨의 축음기로 녹음됐다.
에디슨 이전에도 녹음기 발명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1857년 프랑스 발명가 레옹 스콧이 포노토그라프라는 원시적 형태의 녹음기를 만들었다.
오늘날과 같은 평평한 원형 음반에 소리가 담긴 것은 독일 하노버 태생의 발명가 에밀 베를리너가 미국에서 음반 제작에 성공하면서부터다.그후 워싱턴에서 그라모폰사를 설립했다.
베를리너는 1897년 7월 윌리엄 배리 오언을 런던에 파견,유럽시장 개척은 물론 유럽 출신 아티스트들의 녹음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1898년 영국 최초의 레코딩이 이뤄졌다.이것이 올해로 탄생1백주년을 맞는 세계 최고(最古)의 레이블 EMI의 시작이었다.이듬해인 1898년 그라모폰사가 독일로 진출하면서 도이체 그라모폰사가 창설됐고,1903년 RCA의 트레이드 마크인.붉은 딱지(Red Seal)'의 출범과 함께 전설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가.팔리아치'중.의상을 입어라'를 녹음,판매고 1백만장을돌파한 최초의 클래식 음반으로 기록된다.지금까지도 출반되고 있는 RCA의 레드 실 시리즈는 음 반사상 최장수 시리즈로 남아있다. 그 당시엔 요즘처럼 긴 교향곡은 엄두를 못냈고 짧은 클래식 소품과 코믹 송,대중적인 춤곡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녹음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