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칼럼>대선후보를 검증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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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통령 후보에 대한 논의를 자제하라는 청와대의 촉구 강도가 상당히 강한데도 불구하고 최근들어 대선후보에 나서겠다고 공개 선언하는 자천(自薦) 후보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이미 몇마리의 용이라고 대선후보감으로 간주되는 인사들을 제외 하고도 벌써몇명이.공개경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엄동인데도 이런 추세라면정치의 봄이 만개할 4,5월엔 후보들이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는“너무 많아 이름도 못다 외울 정도”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개중엔 진짜 후보를 겨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에서의 위치를 다지기 위해,또는 자신의 비중을 높이기 위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자천타천의 후보들이 나섰으면 적절한 절차를 거쳐 경쟁해야 할 것이다.당내외에 자신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 지지대회도 열 수 있고,비전을 발표하는 강연회도 열 수 있다.모금파티도 열릴 것이고,경륜과 경력을 알리는 책자나 전 단을 만들어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마땅히 이를 권장하고,지원해줘야 할 정당들이 이들의 입을 막느라 야단들이다.여당은 권력누수 때문이라며 대선논의 자제를 호소한다.대통령까지도 대선논의가 마치 경제안정을 해치고 오늘날의 경제침체의 원인이나 되는듯,또는 앞으로 경제난을 치유해가는데 대통령 후보에 대한 논의를 하는게 큰 장애물이나 되듯이 비판한다.
권력집중적인 여당과는 전혀 사정이 다른 야당까지도 이와 비슷한 배타적 행태를 보인다.후보경선에 나서겠다고 주장한 사람은 마땅히 대통령 후보가 돼야 할 당수에게 도전하는 큰 죄나 지은듯 비난받고 버르장머리가 없을 뿐 아니라 해당(害 黨)행위라도한 것처럼 매도해 버린다.
더욱 가관인 것은 선관위가 대선후보들의 지지모임이 선거법 위반여부인지 검토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당내의 예비적인 행사에대해 선관위가 벌써부터 쌍지팡이 짚고 나서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대선논의를 자제해야 한다는 발상이 문제다.특히 여권 내부에선 대선후보 논의가 마치 현직 대통령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레임덕 현상(임기말의 권력누수현상)을 촉발시키는 중대한 해당행위나 되듯 간주한다는 점이다.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후 보가 되었던 92년의 후보 조기가시화 주장과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그때는 국회의원 선거가 먼저 있어서 후보를 미리 정해야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경제난등으로 나라안이 뒤숭숭한 시점에 후보논의를 미리부터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후보 논의가 경제난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니다.대선후보를 미리부터 논의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이 후보감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후보는 대통령의 낙점 하나로 결정될 뿐이라는 사고방식의 발로다.
미국의 경우 11월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각당의 예비선거는 연초부터 시작된다.그러나 예선에 들어가기 1,2년전 후보 출마의사를 표명하고 이를 위한 활동을 벌인다.그러다가 지지가 시원찮으면 물러나고,또 예비선거를 통해 우열이 분명하 게 드러나면중도 하차하기도 한다.그러니 실제로 국민들은 훨씬 전부터 후보감을 요모조모 뜯어볼 수 있다.
경제난을 헤쳐가야 하는 임무는 막중하다.그러나 국민들이 제대로 된 대통령 후보감을 고르는 일도 중요하다.지금까지 밀실에서,현직대통령의 영향력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가운데 낙점받는 과정이나 결과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다.제대로 분석되지 않고,제대로 검증받지 않은 후보가 권력의 낙점으로 후보가 됨으로써생기는 폐해를 우리는 최근 실감하고 있다.
그런 전철은 더이상 되풀이돼서는 안된다.대통령은 경제에 전념하고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은 또 그대로 진행돼야 한다.각당의 대통령후보 논의를 조기에 공개화하자.그래서 제대로 된 대통령을선택할 기회를 국민들이 갖도록 하자.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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