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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는美기업들>7.勞使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근로자의 천국'이라는 미국 기업 취재중 당한.망신'한가지.
실리콘 밸리의 여러 회사를 방문하면서“노동조합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결같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노조가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경영진은 물론 종업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첨단업종 특성상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전통적으로 노조가 센 자동차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웬걸,이쪽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않았다. 물론 포드등 빅3를 비롯한 자동차 관련회사들은 노조 활동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편이긴 했다.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디트로이트시를 중심으로 미국 중북부 지역에 모여있는 수천개 자동차및 부품회사중 노조가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특히 화이트 칼라는 거의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제조업의 경우 60년 51.2%에 달했던 노조 조직률이85년 23.7%,90년 20.6%,95년에는 17.6%로 뚝떨어졌다.
전 산업의 95년말 현재 노조 조직률은 14.9%로 전년에 비해 다시 0.6%포인트 낮아졌다.전국적으로 매년 10만명 이상이 노조를 빠져나가고 있다.
종종 영화 주제가 될 정도로 한때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미국자동차노조(UAW)도 조합원 수가 85년 1백50만명에서 현재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지금도 계속 감소 추세다.
노조 관계자들의 관심도 달랐다.UAW의 포드 담당자 프랭크 하워는“기본적으로는 근로자의 권익옹호가 최대 관심사”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회사가 커야 직원도 이익이란 생각에 수익성 향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가 활력을 회복한 배경에는 이런 새로운 노사 관계의정립이 한몫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변화의 배경은 무엇일까.가장 근본적인 것은 외부 충격이다.
80년대 들어 일본의 공세로 미국 경제가 휘청거린데다,회사가어려우면 바로 사람을.자를 수'있으니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처럼 장기고용의 개념도 없다.연봉기준 계약직이 늘어나 재계약이 안되면 끝이다.“월급 더 받으려다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이 낫지 않느냐.”이들의 반문은 이런분위기를 반영해 준다.
장사가 잘되면 그 열매가 자동적으로 근로자들의 임금과 복지에연결되는등 종업원의.자발적인 동참'을 유도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들도 이런 변화에 단단히 한몫 한다.
“80년 이후 거의 대부분 기업에 확산되고 있는.직업보장 계약'과.이윤공유 계약'들이 노사간 협조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UAW의 레그 맥기) 장사가 잘돼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면 근로자들은 봉급을 훨씬 더 많이 받는다.반면 장사가 안되면 기본 봉급 외에는 한 푼도 없다.이러니 종업원들이 품질 개선,경비절감등에 적극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다.경영진의.오픈 마인드'노력도 만 만찮다.포드자동차의 버트 세르(제조담당 이사)는“정기적으로 종업원들에게 회사 계획과 경영상태등을 설명하는등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활발한 공동 재교육 프로그램도 변화의 한 중요한 요인이다.
회사는 종업원들을 위해 갖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가 하면 기금을 조성,이 돈으로 직원들의 자기발전 및 생산성 향상 노력을 지원하고 있다.회사 지원으로 대학 진학도 가 능하다.
요컨대 직원의 자질 향상을 위해서는 회사가 돈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한편으로 벤처기업들이 활발하게 생기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꾸준히 공급,.그만두는 근로자'들의 불안감을 줄여 주기도 한다.
이런 변화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노사간에.공생(共生)'의 관계가 정립된 것이다.
“과거에는 회사는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종업원들은 불만 속에서억지로 따르는 분위기였다.
회사경영이 종업원 복지와는 관계 없었다.그러나 이제는 모든 게.우리의 일'이 됐다.열심히 일하면 그만한 보상이 있고,대신회사가 어려우면 나 자 신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것이 창의적인 작업 환경이고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생각한다.” 맥기는 미국 노사 관계의 변화를 이렇게 요약했다.
[디트로이트=김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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