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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의 대통령, 백인의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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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흑인 투표자 가운데 96%가 오바마를 찍었다고 한다. 압도적인 지지다. 백인 투표자는 43%가 오바마를 찍었다. 매케인을 찍은 백인(55%)이 더 많다. 백인만 투표했다면 매케인이 당선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흑인 유권자는 13%에 불과하다. 백인(67%)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히스패닉(15%)보다도 적다. 그러니 흑인이 96%가 아니라 100%가 모두 찍었어도 흑인의 힘만으로 흑인 대통령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백인의 43%가 오바마의 피부색을 문제 삼지 않고 지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종차별의 피해자인 흑인보다 백인이 더 관용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오바마를 찍는 데 피부색을 이유로 주저하지 않은 백인들이야말로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리자라고 찬사를 보내고 싶다. 더군다나 55 대 43이라면 같은 백인 후보끼리의 대결이라도 나올 수 있는 비율이다.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의 결과가 달랐던 브래들리 효과도 없었다. 그렇다면 전체 미국 시민에게 인종의 편견을 극복했다고 박수를 보내도 지나치지 않다.

오바마는 당선이 확정된 4일 밤 시카고의 그랜트 공원에서 연설을 했다. “이 승리가 누구의 것인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바로 여러분의 것이다.” 오바마가 말한 여러분은 흑인이 아니다. 자신에게 표를 준 유권자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 미국 국민 전체를 말한 것이다.

“링컨은 우리보다 더 분열된 상황에서도 우린 적이 아니며 친구라고 말했다…특히 견해가 일치하지 않을 때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고, 나라를 재건하는 일에 여러분의 동참을 요청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강조했다. 오바마가 첫 흑인 출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화합의 리더십 덕분이다. 그는 상원에서도 공화당 의원들과 손을 잡고 법을 만들었다.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을 맡아서도 보수적 인물을 편집자로 끌어들였다. 그가 백인을 적대시하고, 배척하는 인종주의자였다면 대통령이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오바마가 먼저 마음속 인종의 벽을 허물었기에 백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오바마는 경선이 끝나자 힐러리의 참모까지 끌어다 썼다. 클린턴과의 공동정부란 말까지 나왔다. 정권인수팀은 팀장인 웬디 셔먼을 비롯한 클린턴 정부 인사를 대거 포함했다. G20 정상회의에는 클린턴 정부의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공화당 소속 전 하원의원 짐 리치를 대표로 보냈다. 경제위기에 초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인 것이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도 우리는 비슷한 감격을 누렸었다. 그때는 호남 출신이 대통령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많았다. 인구비율이 영남권의 절반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동서 간 지역갈등이 심각했다. 그의 지지자인 유시민 전 의원마저 『게임의 법칙』이란 책을 써 당선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가 내세운 ‘뉴 DJ’라는 것도 영남과 중도보수층을 끌어안는 노력이었다. 민정당 출신인 이종찬 전 의원을 끌어들이고, 노태우 대통령의 정무수석이었던 김중권씨를 첫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미미할지 몰라도 영남권을 포함해 비호남권에서도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취임 이후 편중인사 논란은 있었지만 적극적인 탕평 노력이 있었기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노선을 추종하지 않는 세력은 모두 타도 대상으로 삼았다. 스스로 색깔을 선명하게 구분했다. 386과 생각이 다른 국민은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저주를 퍼부었다. 심지어 집권당 내부에서조차 ‘난닝구와 백바지의 싸움’을 벌였다. 국민을 부끄럽게 하고,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결코 최고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다. 오바마가 지금이라도 백인을 타도 대상으로 삼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실패한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은 건 그런 편협함이다. 나라 살림이 거덜날 위기에 처했건만 한국 정치인들은 여야 없이 정치공방만 벌이고 앉았다. 집권당이란 사람들이 경선의 앙금조차 지우지 못하고 “왜 거기 가서 밥을 먹었느냐”며 치졸한 파벌 단속이나 하고 있으니 야당에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알량한 그 주류 파벌마저 또 쪼개고 갈라 특정 집단의 역할론을 떠들고 있으니 기가 찬다.

김진국 편집국장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