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주목받는인물>3.자크 시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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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올초 연두 기자회견에서“강하고생동하는 프랑스를 건설하고 그 정체성을 되살리자”며.신(新)드골주의'의 기치를 다시 올렸다.
국제무대에서 프랑스의 실추된 위상을 되찾고.강대국'으로 인정받자는게 핵심 내용이다.올해도 초강대국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며독자노선을 펼치는 일종의 반미(反美)정책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다짐인 셈이다.
시라크 대통령은 이미 지난 한햇동안 아프리카.중동.북대서양조약기구 문제,유엔사무총장 선출등에서 사사건건 미국과 마찰을 빚었다.국내에서는 대미(對美) 마찰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지지도가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지난해 10월 이스라엘 방문시 미국의 후원을 업고 있는 이스라엘을 비난하고.약자'팔레스타인을 옹호해 모처럼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시라크의 이런 신드골주의는 그가 당면한 국내정치의 어려움에서 연유한다.그의 시선은 새해 벽두부터 2월 총선에 고정돼 있다.지금처럼 인기가 바닥을 허우적대다간 총선 패배가 자명하기 때문이다.
반대당 출신의 총리와 내각을 두고 동거(同居)정부를 구성해야하는.불행한 대통령'이 될 위기에 몰렸다.
시라크는 86년 사상 최초의 동거정부에서 총리를 역임했던 경험이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겪었던 수모와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안다.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95년 취임때부터 주창해온 신드골주의의 개화(開花)는 고사하고 내정에는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한심한 대통령으로 집권 후반기를 보내고 말 것 이다.이번 총선에 누구보다 신경써야 할 처지다.
이미 내치(內治)에서는 복지정책 후퇴.경기침체.실업증가.세금인상등 환영받지 못할 정책으로 인기가 바닥세를 기록한지 오래다.지금까지 인기를 지탱해준 카드는 신드골주의를 내세운 외교정책뿐이다.결국 이번 총선의 승부수도 거기서 찾아야 할 처지며 세계의 모든 일에 개입하는 미국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올해 시라크는 국제무대에서 자주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그러나시라크의 신드골주의야말로 그의 국내정치적 생존전략에 다름아니다. [파리=고대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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