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아들이 가출하였다.
무슨 소설 제목 같고 영화 제목 같은 이 문구가 자신의 현실이 될 줄은 민혁기로서는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분명히 가출하였다.
민혁기의 아들 준우는 자기 방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앞에 쪽지 한 장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아버지,v.
hwp 파일을 읽어보세요.” 하얀 에이 포(A4) 용지에 검은 볼펜으로 갈겨 쓴 짧은 한 구절이 불길한 예감을 와락 풍겼다. 혁기는 책상 의자에 앉아 아들의 컴퓨터를 켰다.읽어보라는파일이 어느 디렉토리에 있단 말인가.우선 아래아 한글 방을 찾아들어가 여러 개의 디렉토리 중에서 편지들이 모여 있는 곳을 열어보았다.그러나 그 디렉토리에는 브이라는 이름을 가진 파일은눈에 띄지 않았다.
혁기는 디렉토리 이름들을 살피다가 시크리트(secret)라는방으로 들어가보았다.과연 거기에 브이 파일이 있어 그 파일을 불러왔다.몇 가지 과정들을 거쳐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이 실행되었는데,암호를 넣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하긴 비 밀스런 내용들을 모아둔 방의 파일에 암호가 붙어 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암호를 알아낸단 말인가.파일을 읽어보라고 해놓고는 암호는 가르쳐주지 않다니.
혁기는 은근히 짜증이 났다.그러다가 쪽지에 적힌 글귀 중 브이와 그 다음 마침표 밑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왜 밑줄을 그어놓았을까.혁기는 그 밑줄이 암호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컴퓨터 문자에서 마침표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혁기는 암호를 넣으라는 빈칸에 브이와 마침표를 조심스럽게찍어 넣었다.물론 그 빈칸에는 커서만 뒤로 두 번 밀려날 뿐 아무런 글자도 찍히지 않았다.
마침내 브이 파일이 열렸다.
“엑스 세대는 끝났다.이제 브이 세대를 선언한다.” 파일의 첫문장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혁기는 둔기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엑스 세대라는 말은 알겠는데 브이 세대는 무슨 뜻인가.
“엑스 세대라는 말이 sixties의 x에서 나왔다면 우리는seventies의 v,즉 브이 세대다.서른 살이 넘어 마흔을바라보는 자들,특히 얼굴이 좀 예쁜 여자들을 가리켜 엑스 세대,신세대 어쩌고 하는 문구들을 보노라면 구역질이 난다.어떻게 그들이 신세대란 말인가.신세대 문화는 이제 우리 브이 세대가 접수하여 담당하기로 한다.” 글=조성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