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수출되는 ‘디지털 새마을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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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경기도 이천시 부래미마을을 찾은 캄보디아 조세국 공무원들이 마을정보센터에서 마을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있다. [안성식 기자]

지난달 31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부래미마을의 마을정보센터. 캄보디아 경제금융부 소속 조세국 직원 12명이 마을 홈페이지(buraemi.invil.org)를 관리하는 이기열(63·마을위원장)씨로부터 인터넷을 이용한 농작물 전자상거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한결같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들이었다.

일행 중 한 명인 순 보티는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농민들까지 인터넷으로 농작물을 판매하는 수준인 줄은 몰랐다”며 감탄했다. 한 시간가량의 전자상거래 시연이 끝나자 이번에는 사물놀이 체험이 이어졌다. 농촌의 생활 풍속이 관광상품이 된다는 설명에 놀랍다는 반응들이었다.

2003년 정보화마을로 선정된 부래미마을은 지난해부터 전자상거래와 체험 관광 양쪽에서 착실한 성과를 냈다. 모내기 체험, 청정쌀 판매 등을 통해 올해 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덕분에 한국의 정보화마을에 관심 있는 외국 공무원들에게 단골로 소개되고 있다.

해마다 일본·중국·동남아 등지의 공무원·농민이 20여 차례 견학한다. 외국 공무원들의 한국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민간기관인 한국개발전략연구소의 강찬미 연구원은 “정보화마을 방문은 반응이 좋아 자주 이용하는 코스”라고 말했다.

한국 농촌의 정보화마을 사업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정보기술(IT)과 농촌이 만난 흥미로운 프로젝트”라며 외국 정부의 전자정부·NGO 관계자, 기업인 등이 꾸준히 벤치마킹해 가고 있다. ‘디지털 새마을운동’이라는 평가도 있다. 지난해 말까지 전체적으로 70여 개국 1900여 명이 다녀갔다.

◆내실 다지는 정보화마을=338개 정보화마을은 주민의 인터넷 이용률이 일반 농어촌(29%)의 두 배를 넘는 65%를 기록하는 등 정보화 사각지대였던 농촌의 정보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중복 투자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체험관광의 경우 농림수산식품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 사업(마을당 2억원 지원), 문화관광체육부의 문화역사마을사업(5억~20억원 지원) 등 포장만 다를 뿐 내용은 엇비슷한 사업이 6개나 된다. ‘일단 받고 보자’는 식의 마을 이기주의가 가세, 일부 마을은 중복 지원의 ‘혜택’을 누린다.

정부 지원이 끊길 경우 정보화마을은 자생할 수 있도록 방안을 찾아야 한다. 정보화마을은 홈페이지와 전자상거래 관리,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을 위해 주민 중 한 명이 관리자로 활동해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가 부족하다 보니 외부 전문가를 써야 한다.


정부는 외지인 관리자 인건비 조로 마을당 연간 132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이 돈을 마을 스스로 부담하려면 연간 1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올해 전자상거래 매출은 마을당 1300만원에 그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중장기 발전계획을 세우는 등 정보화마을 내실화에 나섰다. 내년부터 정보화마을 추가 지정을 당분간 하지 않을 방침이다. 또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주민들의 사업 의지가 부족한 마을은 지정 해제할 계획이다. 현장 실사 등을 통해 대략 20개 안팎의 마을이 퇴출된다. 대전 유성 온천구암배 마을과 충북 음성 부윤 마을 두 곳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 이미 정보화마을에서 해제됐다.

◆“마을 특성 살려 전략 차별화”=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정보화마을 발전 방향도 ‘조성’보다는 ‘활성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 박영민 선임연구원은 “마을별로 주민들의 역량과 환경이 크게 차이 나는 만큼 정부는 획일적인 지원 대신 마을 특성에 맞는 지원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정보화마을의 전자상거래 매출액을 근거로 성과를 따져서는 안 된다”며 “도농 간의 정보 격차를 해소한다는 공익적 측면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진흥청 조록환 연구관은 “정보화마을 홈페이지인 ‘인빌’(invil.org)의 인지도를 우선적으로 높여야 한다”고 처방했다. 또 “소비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농작물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아이템별로 고를 수 있도록 인빌의 기능도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남대 권용대(농업경제학과) 교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주민이 정보화 마인드로 무장하고 창의성을 적극 발휘해야 정보화마을이 성공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농산물의 시장 경쟁이 앞으로 점점 가속화되는 만큼 농작물 품목 차별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마을들은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성시윤·최선욱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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