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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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종합부동산세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세제통’인 김진표 경제부총리(직책·명칭은 당시 기준)는 2003년 5월 “획기적인 보유세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청와대에선 김수현 국민경제비서관이 종부세 입안에서 실행까지를 일일이 챙겼다.

종부세란 이름이 처음 나온 것은 2003년 9월 행정자치부의 ‘보유세 개편방안’을 통해서다. 처음부터 조세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 안에서도 도입을 미루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지연시키면 정책 자체가 사라질 우려가 있다”며 밀어붙였다.

2004년 11월 11일 종부세는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공시가격 9억원이 넘는 집을 갖고 있으면 2005년부터 종부세를 물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재정경제부에 별도로 만들어진 부동산기획단이 실무를 맡았다. 초대 단장은 이종규 재경부 세제실장이 맡았다. 지방세인 재산세의 일종인 종부세가 국세가 된 데는 김대영 행자부 지방세제관의 역할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종부세는 인별 합산 방식으로, 이번에 헌재가 위헌 결정을 한 세대별 합산 방식은 아니었다.

위헌적 요소가 들어간 데는 판교 신도시의 영향이 컸다. 2005년 6월 판교 신도시 택지 분양이 달아오르자 청와대와 정부엔 비상이 걸렸다. 보유세 강화 명목으로 시작된 종부세가 집값 억제 수단으로 완전히 변한 것도 이 무렵이다.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삐를 잡았다. 그는 “헌법을 바꾸는 정도로 힘을 들이지 않으면 바꿀 수 없는 제도를 내놓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한덕수 경제부총리,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 오영교 행자부 장관이 머리를 맞댔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2005년 ‘8·31대책’이다.

종부세 부과 대상은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에서 6억원 초과로 확대되고, 인별 합산이 세대별 합산으로 바뀌었다.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당시 “종부세 개편은 전체 주택 보유자 중 1.6%에 해당하는 투기꾼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을 종부세를 내는 2%의 투기꾼과 종부세를 내지 않는 98%의 서민으로 나누는 이 같은 논리는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여론몰이 수단으로 활용됐다.

세제 실무를 총괄한 김용민 재경부 세제실장과 기타 부동산 대책을 맡은 권도엽 건설교통부 기획관리실장은 ‘8·31대책’으로 훈장을 받았다. 김 실장은 조달청장을 지내고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있다. 권 실장은 현재 국토해양부 차관이다. 종부세 집행을 책임졌던 전군표 국세청 차장도 훈장을 받았다. 그 뒤 국세청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말 수뢰 혐의로 구속됐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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