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4자회담으로 국면전환-공비침투 사과 일단 매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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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잠수함사건에 대한 북한측 사과문제가 일단 마무리됐다.
사과문안이나 그동안의 협상과정에 비춰 비록.엎드려 절 받는'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앓던 이'하나가 빠진 셈임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지난 3개월여 동안 한반도 정세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던.잠수함.무장공비 국면'이 걷히면서 남북한 관계는 국면전환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이형철 북한외교부 미주국장의 방미(訪美)로 모두 10차례에 걸쳐 진행된 뉴욕접촉을 통해 미국은 크게 두 가지를 추구했다.
하나는 잠수함 국면 타개이고,다른 하나는 4자회담 국면 개척이다.미국은 이 두 가지를 한 묶음으로 타결하는데 일단 성공했다.미국은 4자회담을 위한 3자 공동설명회에 참가하는 대가로 북한측이 제시한 요구조건을 모두 수락했다.당근을 주어 말을 물가까지는 끌고 온 격이다.이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일단 4자회담국면으로 넘어가게 됐다.
지난 4월16일 제주도 정상회담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한반도 4자회담을 공동제의했다.정전협정당사자인 남북한과 미국.중국 4자가 모여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논의하자는 취지다.그 전단계로 북한에제시한 게 3자 공동설명회다.4자회담이 무엇을 위한 것이고,4자회담에 참가하면 북한에 어떤 혜택이 돌아갈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북한은 4자회담 수락여부에 대한 공식입장 표명을 유보한채 설명회 참석조건을 내걸었다.미국 카길사를 통해 미국산 곡물과 마그네사이트.마그네슘.보크사이트 같은 북한산 광물을 맞바꾸는 형태의 바터거래를 최대 50만(곡물기준)까지 허용 해 달라는 것이 그 하나였다.경제제재 추가완화 요구도 당연히 뒤따랐다.마지막 하나는 북.미 고위급회담을 재개하자는 요구였다.
이런 요구조건을 놓고 밀고당기고 하는 와중에 잠수함사건이 터짐으로써 논의가 중단됐다.미국은 뉴욕접촉을 통해 잠수함사건을 매듭지으면서 3자 설명회 참가조건을 모두 받아들였다.대가를 주며 3자 설명회 참가를 유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던 당초 입장이 되레 잠수함사건에 밀려 실종된 꼴이다.북한으로서는 해코지를 한덕분에 상당한 추가이익을 챙긴 것이다.
남북한과 미국 3자가 공동의 주제를 놓고 머리를 맞댄 일은 분단 이후 한번도 없었다.그런 점에서 3자 설명회가 갖는 역사적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과연 3자 설명회가 4자회담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정부는 3자 설명회가 4자회담 예비회담의 성격을 띠도록 하겠다지만 이것은 북한측 태도로 보아 불투명하다.남한을 배제하고 미국만 상대하겠다는 북한의기본태도에 갑작스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기 어려운 탓이다.말을 물가까지 끌어 오는 것과 물을 먹이는 것은 별개인 것처럼.
북한이 단지 미국이 주는.과실(果實)'을 노려 3자 설명회에응하는 시늉만 내는 게 아니냐는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그런 점에서 북한의 4자회담 수락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이 제시한 3자 설명회 참석조건을 모두 들어주기로 한 것은 한.미 양국이 잠수함국면 타결에 급급한 나머지 북한의 술책에 또 한번놀아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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