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代 44회 한해에 한번 꼴-역대 국회 변칙처리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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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나라만큼 날치기가 잦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2대 국회때부터 94년 14대 국회까지 무려 44회의 변칙처리가 이뤄졌다.
이번까지 포함하면 45회다.평균적으로 한해에 한번씩은 날치기를경험한 셈이다.
역대 국회를 보면 민자당이 집권하던 13대가 19번으로 가장많고 14대때 네번이다.민정당이 집권하던 12대엔 여섯번 있었으며 공화당이 집권하던 7대는 다섯번,6대 세번 있었다.5대,10대,11대때는 날치기가 없었다.
변칙처리의 효시는 국토가 전란에 휩싸인 2대국회로 52년 당시 자유당은 부산에서 발췌개헌안을 날치기 처리했다.4대때인 58년 자유당이 보안법개정안 처리땐 무술경위까지 동원됐다.당시 자유당은 야당의원들을 의사당 지하실과 휴게실등에 분산 감금한채단독으로 통과시키다 유혈사태까지 발생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65년 6대 국회에선 이틀 연속으로 월남파병동의안과 한.일 협정비준동의안이 날치기 통과됐다.
69년(7대)의 3선개헌은 본회의장이 아닌 곳에서 처리한 제3장소 날치기의 효시.당시 여당인 공화당은 야당이 태평로 의사당의 본회의장을 점거,농성을 벌이자 길건너 제3별관 회의실에서뚝딱 해치웠다.오전 2시쯤 제3별관의 전등은 물 론 가로등과 담뱃불까지 끈 암흑속에서 의사봉 대신 주전자 뚜껑을 두드렸다.
여의도로 국회가 옮겨진뒤 첫 날치기는 79년 김영삼(金泳三)당시 신민당총재 제명동의안 처리.본청 1층의 146호실이 이때처음으로 이용됐다.야당이 본회의장을 점거하자 평소 의원총회 장소로 이용됐던 이곳에 사복경찰들이 철벽을 둘러싸 고 날치기통과를 했던 것.
85년 예산안처리때도 146호가 이용됐는데 이때 신민당의 장기욱(張基旭)의원등이 철제봉등으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수라장이되기도 했다.
그래도 3당통합이 이뤄진 90년까지는 날치기를 하더라도 국회법상 절차를 존중하려 했고,의장이나 위원장도 사회봉.마이크등 그들의 품위와 직결되는 준비물이 없을 경우 사회를 보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90년이후 손바닥 의결(90년3월 문공위),의석날치기(90년7월 본회의),녹음기 녹취로 속기록 대신(90년12월)등 갖가지 추태가 벌어지더니 급기야 94년12월 예산안처리땐 의장석이 이동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동원됐 다.당시 이춘구(李春九)국회부의장은 야당의원들을 따돌리고 본회의장 좌측 2층 벽면에 붙은 지방기자석에서 무선마이크로 20초만에 가결을선포했다.의사봉도 두드리지 않았다.
이번 또한 성탄절로 야당의원들이 방심한 사이 새벽에 몰래 국회에 모여 기습처리했다는 점에서 새 기록을 남겼다.3선개헌안 날치기처리도 새벽에 이뤄졌지만 당시는 야당이 국회안에 있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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