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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청와대의 잠 못 드는 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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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바마는 당선수락 연설에서 평범한 미국 시민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씻어줬다. 정치는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화법은 직설적이며, 언어는 진솔하다. 고통과 애환으로 얼룩진 서민적 삶의 기억을 역사로 바꿔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담대한 희망을 각인해주었을 때 이미 그는 흑인이 아니었다. 아니 흑인이어서 그의 언어는 더욱 비장했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가 보낸 축하 전문처럼 ‘영감과 열광으로 미국 민주주의의 활기찬 생명력을 입증한 빛나는 승리’였다.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오직 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문명사적 드라마, 민주주의의 에스프리를 보여준 21세기의 대사건이다.

4년 내지 8년간 미국은 진보(liberal)로 방향을 틀 것이다. 1990년 초반 이후 미국은 너무 불평등한 사회로, 너무 군사력을 내세우는 국가로, 너무 오만한 제국으로 군림해 왔다는 게 민주당과 오바마 진영의 확고한 지론이다. 민주당의 간판 스타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의 저서 『진보의 양심』에서 오늘날의 미국은 그 문제 투성이의 풍요를 거머쥐려고 ‘미국이 있어야 할 원래의 자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고 비판했다. 부의 집중, 취약한 중산층, 다수의 빈곤이야말로 네오콘이 득세한 결과며, 가족·일자리·행복이라는 미국의 3대 가치는 치유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되었다고 경고했다. 오바마는 시카고대학과 브루킹스연구소의 진보 인사들을 두루 동원해 ‘진보 정치 패키지’를 곧 실행에 옮길 것이다. 국내정책으론 복지·증세·고용안정·차별금지·이민자격 완화·자국시장 보호 같은 프로그램이, 대외정책으론 적대국과의 협상·FTA 재고·국제기구 강화·강대국과의 등거리 외교가 예고되어 있다.

미국엔 당연한 방향 선회이자 전쟁과 충돌로 얼룩진 세계 질서엔 다행스럽기 그지없는 이 진취적 변화가 우파 보수정권이 집권한 한국엔 뭔가 어긋난 느낌을 주는 것은 웬일인가. 말의 품격과 듬직한 행보를 제외한다면, 오바마 정권은 노무현 정권과 배짱이 더 잘 맞았을 것이다. 햇볕정책 지지도 그렇고, 복지·평등·증세를 선호하는 것도 그렇다. 한 번의 조우에 불꽃이 튀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부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찰떡궁합은 고작 일년도 안 돼 그 유효기간이 끝나버렸으니 한국으로선 운이 없다고 해야 할지, 팔자가 사납다고 해야 할지 갑갑한 노릇이다. 부시와 영국의 블레어 총리가 그랬듯 정상 간 인간적 호감도와 우정은 현안 문제를 타결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이다. 부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 친구(this guy)’라는 속어로 부를 정도로 관계가 소원했으니 일이 잘 풀릴 리 만무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3대 브랜드인 독실한 크리스천·보수주의·기업가 경력이 부시에겐 신뢰의 상징이었지만, 오바마에겐 어떤 코드로 읽힐지 궁금하다.

아마 오바마는 이 대통령을 네오콘의 원조 격인 레이건과 대처의 한국적 변형으로 여길 개연성이 높다. 지난 7일 전화통화에서 “불고기와 김치가 가장 좋아하는 점심메뉴 중 하나”라는 오바마의 덕담에 이 대통령이 적이 안심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은 오바마의 지역 기반인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을 위협하는 나라이자 불공정 무역을 칭얼대는 귀찮은 파트너라는 그의 인식과, 부지런한데 이기적인 민족이라는 그의 한국관이 바뀌지 않는 한 향후 4년간 한국의 항로는 거칠 듯하다. 그래서 청와대는 다음 달 오바마와의 최초 회동에 대비해 코드 탐색에 들어갔다는 소문이다. 아직 가시지 않은 금융위기와 강만수 장관의 잦은 구설수로 신경이 예민한 터에, 이래저래 ‘청와대의 잠 못 드는 밤’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