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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주름살까지 닮은 아름다운 ‘삶의 동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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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작가 이씨는 “깊어가는 불황 속에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은 역시 가정과 그 가정의 축을 이루는 부부다. 젊은 날의 싱그러운 사랑보다 주름 속에 담긴 속 깊은 사랑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이혼을 쉽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부부의 아름다운 동행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 속에 담긴 부부의 사랑을 살짝 엿보았다.

이에스더 기자

임권택 - 채령 부부
(영화감독)
아내는 내 키에 맞춰 키를 줄였다

임권택·채령 부부, 1979년 결혼식


임권택 감독이 말하는 해로의 비결은 “내 키에 맞추어 키를 줄여준 아내의 헌신”이다.

“연애 8년, 결혼 30년. 우리는 38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나는 한번도 쌀값이 얼마인지, 생활비가 얼마인지 모른다. 아내의 생일조차 함께하지 못한 게 부지기수다. 같이 보낸 시간과 경제능력으로 남편 자격증을 준다면 나는 번번이, 아니 영원한 불합격자다.”

임 감독은 예술가의 아내라는 외로운 자리를 평생 묵묵히 지켜준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털어놨다. 모델이자 배우로 인기를 누리던 꽃다운 시절 가난한 영화감독과 결혼한 아내의 선택을 두고 “무모한 결단”이라면서도 “화려한 삶에 미련이 남아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고 재미없는 아내와 엄마의 길을 묵묵히 인내해 주었다”고 고마워했다.

“내가 이렇게 예술의 잎과 꽃을 피우고 오늘의 위치에 이르기까지는 아내의 희생과 헌신이라는 뿌리가 있었다. 항상 조용히 나를 세워주는 아내는 나를 늘 ‘기둥’이라 표현한다. 어떤 영화 대사보다 더 감동적인 한마디다.”

배상면 - 한상은 부부 (국순당 회장 - 배상면주류연구소 이사장)
여든살 넘은 아내가 귀엽더라


 배상면(84) 회장은 여든 살을 넘긴 뒤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부인 한상은(80)씨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여보, 잘 잤소?” 무미건조해 보이는 아침 인사지만 일에 쫓기던 젊은 날 부인의 생일 한번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담긴 사랑의 메시지다. 배 회장은 “아내는 나의 온갖 실수를 감싸주며 80 고개를 넘었다”며 “쑥스럽지만 무조건 인사를 계속하고 보니 정말 아내가 사랑스럽고, 좀 주책없는 표현이지만 귀엽고 더 아름답게 보이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령 - 강인숙 부부 (전 문화부 장관 - 영인문학관 관장)
상대방이 사라질까 두려운게 사랑


강인숙 관장은 한국전쟁 통에 서울대 임시 교정에서 동급생으로 남편을 처음 만나 사랑을 싹틔웠던 시절을 회상했다. “서울 집이 폭격을 당해 있을 곳이 마땅치 않아 나는 남들보다 좀 늦게 상경했다. 먼저 온 친구가 만나자마자 "이어령이가 너 안 온다고 안달한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같은 현대문학반이니까 수강과목이 같아 대리출석을 해주고, 노트도 빌려주며 친하게 몰려다녔다. 그렇게 시작해서 하루도 안 만나는 날 없이 5년을 지낸 후, 결혼을 했고 지난해에 결혼 50주년이 지나갔다. 어떤 때는 전생에서부터 같이 있었던 느낌이 들 정도로 실로 유구한 세월을 함께 걸어온 것이다.”

개성 강한 부부이기에 가끔 충돌도 있었지만 언제나 서로의 건강을 염려해 한 수씩 접곤 했다고 한다. 강 관장은 그것이야말로 사랑이라고 되새긴다.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그것은 생명을 담는 그릇인 몸이다. 상대방의 몸이 없어지는 것이, 그렇게 절박하게 두렵다면 그건 어쩔 수 없이 사랑이다.”

조정래 - 김초혜 부부(소설가 - 시인)
결혼은 줄기차게 돌봐야 할 화초


“아내는 정말 단점이 없다. 내가 다 사랑해 버리니까.”

문단에서 애처가로 소문난 조정래 작가는 결혼식 주례를 설 때면 새내기 부부들에게 늘 건네는 말이 있다. “첫째, 서로의 단점까지를 사랑하라. 둘째, 결혼이란 나무는 자연의 품에서 자연의 힘으로 크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줄기차게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화분의 화초다.”

결혼 생활 42년째가 되는 작가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이 충고에 대해 “우리 부부는 그 두 가지를 실천했기 때문에 자신에 차서 하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는 『태백산맥』『아리랑』『한강』32권을 마친 다음 후기에서 ‘이 소설들의 절반은 아내가 쓴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썼다. “연애 시절부터 아내는 내 소설의 최초의 독자였고, 교정자였고, 감수자였고, 감독자 역할을 열성적으로 해주었다. 나 또한 아내 시의 열성적인 독자지만, 나머지 역할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지적하는 것들을 꼬박꼬박 다 고치지만, 아내는 내 지적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언뜻 아내에 대한 볼멘소리로 들리는 이 말에 작가는 익살스러운 사랑 고백을 덧붙인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 살면서도 나는 김초혜의 남편인 것이 복되고 값지고 사랑스럽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김초혜와 결혼할 것이다.”

손진책 - 김성녀 부부(연출가 - 연극배우)
덤덤한데도 모범부부 소리 들어


한 해에 200회 넘는 공연 일정을 소화하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인 배우 김성녀는 따뜻한 밥상만으로도 그간 쌓인 서운함을 툭툭 털어내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우리 부부는 참 묘하다”고 말했다. “남편이나 마누라 같지 않을 때도 있고 자기 일에만 전력을 다하는 이기심도 보인다. 애정 표현 없이 덤덤하게 살며 종속이 아닌 개체 개념으로 서로를 이해한다. 자주 못 만나 어떨 땐 남에게 소식을 듣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우린 모범 부부로 인정받고 있다.”

각자 일이 바빠 항상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서로를 만나 행운”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들 부부는 “부부끼리 너무 바라지도 말고 무조건 신뢰하고 작은 일에 감사하고 동지처럼 도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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